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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9일 금요일

경제와 자유 - 우선순위의 문제

친구의 글 중에서 ...
나는 물질적인 풍부함, 괄목할만한 경제성장보다는 가능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보니 박 대통령에 대하여는 역시 과를 많이 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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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에 대한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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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사장, 사람답게 사는 문제가 경제보다 우선이라는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문제는 어느 정도의 풍요함은 갖춰놓고서야 인간답게 사는 문제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풍요해져야 철학, 역사, 민주주의 등
사람 사는 문제를 연구할 경황이 생기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모두 종교적인 삶에 인간답게 사는 문제를 열심히 추구하지만 궁핍하니까 별 의미가 없고, 일할만한 사람들이 모두 승려가 돼서 그러고 있으니 잘 살 수가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못살지만 다 평등하게 느끼고, 따라서 행복 지수가 높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웃긴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물질적인 풍요함이 있어야 정신적으로도 수준이 올라가고, 그 후에 민주주의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민주주의와 별개의 단어지만 이웃 사촌처럼 함께 다닙니다.
그런데 아마 어느 정도까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딴지성 글이 되어 미안합니다.

친구와의 댓글 대화 - 박정희 대통령

'백선업장군 글을 읽고'에서 제 답글에 대한 친구의 반론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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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 말씀 흥미있네. 공감이 가네요.

단지 경제적인 면의 박 정희대통령은 공감하는데, 워낙 인권이 침해되다 보니 나는 공보다 과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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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위 친구의 글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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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기 내지 중기까지는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없던 나라에서 중화학 공업을 일으킬정도로 성장시켰는데,
세계 역사 상 거의 유일한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했어도 그 시대에는 그많한 경제성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필리핀,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는 우리나라보다 서너 배 잘 살었던 나라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고, 북한도 당시에는 남한보다 산업이 월등히 나았습니다.

독재 문제가 늘 이야기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가들이나 정부 관료들에게 자율을 허용했고,
능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박대통령이 민주투사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들을 전면 허용했다면 당시로서는 경제발전을 안 되었을 걸로 보아야 합니다.
외국에서 아무 것도 없는 한국이 그 많은 외자를 끓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박정희라는 지도자를 믿고, 한국에 돈을 빌려 줘도 떼 먹힐 일은 없겠구나
라고 안심할 수 있었던 덕입니다.

후기의 박정희 대통령은 부인도 비운에 보내고 하면서 안정감이 많이 떨어진 세월이었습니다.
장기 집권에 연연했던 점도, 이런 상황에서 판단력도 좀 떨어전 점도 있겠고,
박대통령 본인으로서는 잡아 논 기틀을 허물면 나라가 금방 절딴날 걸로 생각했겠지요.

우리 현대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정도면 그냥 영웅으로 대접해야지,
잘한 점과 못한 점이 반반이다 식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한국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세 가지

'민주투사'가 민주주의 '결정적 요인' 아니다

문근찬 한국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뉴데일리 2010-04-09

제국주의 시대 이후에 독립한 나라 중에서 한국은 단 기간 내에 민주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성공사례에 속한다. 우리나라가 짧은 세월 동안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민주 투쟁을 했던 많은 투사들을 떠 올릴 것이다. 물론 그들의 노고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다만 그것이 과연 ‘결정적 요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들의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요인들 중 상식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요인들을 몇 가지 도출해 보고자 한다.

첫째, 현재 북한의 정치체제를 떠 올린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일등 공신은 역시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데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국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남 지역에 자유민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실기했다면 어떤 결과가 되었을지 상상해 보면 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냉전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변방의 작은 나라에 군인들을 파병하여 큰 희생을 치른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군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최근 백선엽 장군의 연재 글에 잘 나와 있듯이 우리의 선배 군인들의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분투가 있었다.

둘째는 경제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만약 경제성장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경제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한국은 이런 점에서 탁월했다.
이번 지진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티는 1804년에 일찌감치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사는 모습은 최빈국을 아직 면치 못하고 있고, 가난하다 보니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전쟁 후 필리핀,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들은 우리보다 경제가 나았었지만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이고, 그러다 보니 그 나라들은 민주주의 사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즉,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우선 어느 정도 잘 살아야 자격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서 영국, 미국, 일본 같은 나라를 보면 알 수 있다.

셋째는 안보에 문제가 없어야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섬나라든지 또는 별도의 대륙이든지 외세의 침략에서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예도 역시 영국, 일본, 미국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경제력은 꽤 있지만 유럽 대륙의 중앙에 있다 보니 외세 침략에 자유롭지 않아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60여 년 간 가상적으로 섬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한국 사이에 바다 같은 작용을 한 것이 북한이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완충지대로서 북한이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는 늘 안보의 위협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북한은 실제적인 안보 상의 위협이 될 수 없었는데, 이는 휴전 후에 한국 뒤에는 역시 미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그야 말로 ‘결정적 요인’이라 할 만 하다. 그 세 요인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인을 들면서 민주투사를 뺀다면, 민주투사의 노고에 대한 평가는 너무 소홀하다며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옥고를 치르는 등 고생한 점을 폄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역할이 ‘결정적 요인’인지 솔직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예를 통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일례로서 아이티는 1804년 독립 후 200 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민주 투사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민주국가가 될 수는 없었다. 앞에 언급한대로 가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는 군주제를 종료시킨 대혁명까지 일으켰던 나라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이 외세 침략을 막아야 한다면서 스스로 다시 군주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안보 위협 때문에 민주주의를 할 수 없었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에 따라, 우리가 지금 북한의 동포와 같이 비참한 지경에서 살지 않고 그나마 자유를 향유하며 살 수 있도록 한 ‘결정적 요인’과 관련하여 세 영웅을 꼽는다면, 첫째는 민주국가를 건국하고 외교로써 안보를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 둘째는 경제성장의 기틀을 다져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게 한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셋째는 육이오 남침과 그 이후의 안보 위협을 막아 준 미국이라는 우방을 들 수 있다. 이 특이한 결론에 대해 이념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관적인 선호의 문제를 떠나서 위 세 요인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10년 2월 12일 금요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빅 브라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는 지배자가 주민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상징이다. 오웰이 그린 사회에서는 모든 이들은 당국의 완전한 감독 하에 살아간다. “빅 브라더는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말로 텔레스크린 속 빅 브라더는 이 사실을 끊임 없이 주지시킨다. 서울의 도시철도공사는 소설 속 빅 브라더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런 성향을 다소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한 가지 예는 에스컬레이터 두 줄 타기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의 좌측을 바쁜 사람들을 위해 비워 놓던 전통을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 두줄 타기 캠페인으로 망가뜨렸다. 굳이 망가뜨렸다는 표현을 하는 이유는 도시철도공사의 이 캠페인이 에스컬레이터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키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혼란만 가져온 점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시민들은 왼 쪽을 바쁜 사람을 위해 비워 놓고 있는 가운데, 그 홍보의 영향인지 나란히 가로막고 서 있는 사람들도 더러 생겼다. 그러다 보니 시간 절약이 필요해 에스컬레이터 왼쪽으로 걷는 사람들과 막아 선 사람 간에 무언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도시철도공사가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손잡고 에스켈레이터를 가로 막고 있는 포스터를 붙이고 캠페인을 벌인 결과치고는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도시철도공사의 이런 캠페인이 시민들의 예절과 관습을 섣부르게 재단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예는 일부 전철역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내내 들어야 하는 녹음 목소리다. 필자가 이용하는 역에서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뛰거나 장난치면 다칠 염려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근엄한 목소리가 벌써 여러 해 동안 한 시도 빠짐 없이 반복해서 울려 퍼지고 있다. 더욱이 안내방송은 상, 하 양 방향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엇박자로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 소리는 마치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처럼, “도시철도공사는 시민들이 어린 아이마냥 뛰거나 장난치지 않는지 늘 보고 있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녹음 방송을 수년째 똑같이 반복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력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이런 식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몇 년 전 일본 도쿄에 출장을 갔을 때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느꼈던 인상은 보다 인간적이었다. 출근 시간의 혼잡 속에서 환승역은 수 많은 출근 시민들로 붐볐는데, 지하철 역 근무자가 승객의 동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서 시민들의 흐름이 서로 뒤엉키지 않도록 안내하며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그 지하철역 특유의 구조와 흐름에 맞게 사람들의 동선을 좌, 우로 안내하여 정착시키려는 것 같았다. 이와 비교하자면 우리 지하철은 획일적으로 우측 통행을 유도하는 화살표와 발자국 표시를 붙인 것만으로 시민들의 통행 습관을 재 정립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각 지하철역마다의 구조와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따른 동선 흐름의 차이를 반영하지는 못한다.

소설 속 빅브라더는 늘 감시하며, 반복적인 선전으로 시민을 지배한다. 서울의 지하철도 이제는 시민들이 출근 길 아침부터 이런 느낌을 받게 하기보다는 보다 자율적인 민주 시민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들도록 안내 방법을 개선했으면 한다.


2010. 1. 12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변화에 대한 보수주의 관점은 무엇인가?

최근 강기갑 의원의 국회폭력행위와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MBC PD수첩 보도에 대한 일련의 무죄판결로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이들 논란의 핵심에는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 우리 사회는 특정 사안마다 보수냐 진보냐의 성향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정작 보수와 진보 그 자체의 진정한 의미와 구체적인 지향점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고, 무조건적인 반대와 거부로 일관한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우선 ‘진정한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정치 차원에서 보수주의의 뿌리는 근대 보수주의 사상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에드먼드 버크(Burke Edmund)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비판에서 찾을 수 있다.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성향은, 이성과 능력에 있어서 인간은 본원적으로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제도의 창출이나 사회의 재구성 과정에 미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결과적으로 보수주의는 급진적인 방법, 예컨대 혁명이나 쿠데타 등에 의해 사회가 변혁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특히 버크는 개혁자가 국가의 결함을 다룰 때, 마치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하는 심정’으로, 곧 ‘경건한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현대 경영학을 창시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드러커는 ‘경제인의 종말’의 저술 배경인 1930년대 유럽의 사회 변화를 특히 파시즘 전체주의의 허구성을 관찰하면서 보수주의적 신념을 갖게 되었다. 파시즘 전체주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이성주의자들은 세상의 이치를 완벽하게 파악한 듯이 행세하며 반드시 절대주의자로 변한다. 그들은 자신이 곧 진리라고 선언하며, 이런 사고는 필연적으로 그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계몽 또는 복종시키고자 하는 의무감으로 이어지고,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인류의 행복에 반대하고 국가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자로 간주된다. 이 점이 바로 파시즘 전체주의자들이 잔혹행위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관찰하면서 드러커는 역사 발전은 보수주의적 관점에 의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드러커는 산업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른 대기업에 대해 연구하면서, 기업을 비롯한 사회의 각 기관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이 보수주의의 요체임을 간파했다. 보수주의적 사상가들은 국가의 역할이 비대화 되지 않게 하고, 자율적인 개별 기관,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자율성이 커지는 사회를 지향한다. 결과적으로 보수주의 사상가들은 ‘작고 강한 정부’를 추구한다. 모든 일을 정부가 관장하려는 시도는 잘해야 낭비만을 초래할 뿐이며, 잘못된 길로 가면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일 드러커는 장자크 루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에 의한 구제’의 시대, 즉 국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해결하려는 사조가 1970년대 언저리에서 종말을 고하고 이제 다원화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내다 봤다.

드러커에 의하면 보수주의란 현상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아니다. 보수주의란, 모든 역사는 연속과 변화로 이루어지며 이 둘 사이의 조화를 통해 현재를 바탕으로 부단히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고민하는 사조를 말한다. 보수주의는 이상을 추구하지만 지금까지 걸어 온 역사와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보수주의는 모든 것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늘 재검토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변화의 방법에 있어서 만병통치식의 개혁안으로 일거에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한 번에 하나씩 손에 익은 도구로 개개의 문제를 해결해간다.

이런 점에서 보수주의는 전체주의적 계획경제의 반대편, 즉 시장자본주의와 상응한다. 시장자본주의에서 국가는 기업이나 개인 등 사회의 구성 인자들이 각기 장점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하는 체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추구하는 자유는 엄격한 책임에 의해 유지됨을 이해해야 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스스로 이런 균형 감각을 갖고 있는지 늘 자문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사회에 급진적인 요구가 많아지는 것은 스스로 보수주의의 원칙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임을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드러커는 ‘경제인의 종말’에서 이런 균형이 심하게 훼손되었을 때는 늘 전체주의라는 망령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2010. 2. 8 뉴데일리 칼럼 게재

한국사이버대학 교수/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950 번 만에 합격한 운전면허’에서 우리 사회의 관료주의를 본다.

무려 950번 만에 운전면허 필기(학과)시험에 합격한 60대 할머니가 기능시험을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이 할머니의 이야기는 지난 해에 이미 운전면허 필기 시험을 775 번 낙방했을 때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었었는데 이제 그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 화제의 주인공인 한 할머니가 지난 2005년부터 무려 5년 간 950번의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도전한 끝에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그 동안 주말과 국경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아 시험을 치렀다는 것과, 그리고 그 동안 들어간 인지대를 포함한 비용만 해도 얼추 2천 만원 가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를 다루는 대부분의 매체들의 논조는 하나의 가십거리로서 주인공인 차 할머니의 불굴의 집념을 칭찬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 문제가 아니다. 그 쪽보다 필자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독한 관료주의를 본다. 이 이야기에서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은, 차 할머니가 5 년 간 거의 가망 없는 시험을 수 백 번 치르고 낙방하는 동안,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국내 방송과 해외 토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동안, 이 시험제도에 관계된 이들은 그저 평소대로 시험 감독만 기계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운전면허 불합격 횟수로서 기네스 북에나 오를 만한 이런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결국 이 이야기의 숨은 주인공인 운전면허 관계자들은 법규를 지켰으므로 처벌은 할 수 없으되 도저히 창의력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무대책의 관료주의의 전형을 보였다.

“면허증을 꼭 따 직접 운전한 차로 장사를 하고 아들, 딸 집에도 놀러 가고 싶다”는 한 노인의 소박한 희망을 좀 더 일찍 실현시키기 위한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면 차라리 그 할머니를 설득하여 지레 포기시키는 것이 나았지 않았을까? 혹은 그 집념을 포기 시킬 수 없었다면 어느 시점에선가 특별 지도라도 해서 좀 더 조기에 합격을 시키고자 배려하는 대책이 나왔어야 한다. 혹은 이 사례를 계기 삼아 운전면허 시험 제도를 보다 실용적으로 바꾸고, 이해력 부족으로 필기 시험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방안을 포함하는 제도를 입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무후무한 운전면허 필기시험 낙방 기록이 세계 토픽이 되었고, 이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은 단지 정해진 규칙을 기계적으로 지킬 뿐, 약한 개인이 한 없이 고통을 당해도 꿈쩍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관료주의적 이미지가 박히게 되었다.

전 세계적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기업체들은 고객을 섬기며, 고객에게 서로 차별화 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경쟁한다. 따라서 기업체는 비교적 형식주의, 안정과 무사고를 지향하는 관료주의가 자리잡을 틈이 없고, 부단히 혁신을 해서 고객 가치를 높이는 일이 체질화 되어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방법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점차 관료주의적 무사안일이 자리 잡을 수 있다. 앞의 이야기를 어느 시골 노인의 얼빠진 이야기라고 실소에 부칠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시민을 위한 개선과 혁신 방안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이런 부끄러운 해외토픽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2010. 1. 21 문근찬

중도실용주의가 담아야 할 정신적 가치

오늘의 우리 사회는 이념적 갈등과 경제 공황이라는 상호 관련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난국을 타개할 목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중도실용주의를 다시 강조했다. 그런데 중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그 단어가 주는 모호성으로 인해 좌와 우 모두에게 배척되는 양상이다. 대개의 반응은 좌와 우라는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회색분자 정도로 중도를 평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러나 이번 논의를 단순히 일시적인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전환기에 이루어져야 할 노력의 하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역사의 전환기로서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전환기 이후의 사회는 오늘날과는 아주 다른 사고체계에 의해 사회의 정당성이 정의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얼마나 다른가 하면, 그 시기에 자라난 젊은이들은 바로 전 세대인 오늘날의 혼란과 이념 갈등을 도저히 이해 못할 현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다른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중도실용의 콘텐트를 논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추구해온 자유민주주의가 새 시대에 대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부족한 부분은 자본주의의 절대선인 양 추구되어 온 경제지상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일찍이 드러커는 ‘경제인 개념’ 즉 경제지상주의의 맹신이 자본주의 사회가 청산해야 할 문제의 뿌리로 보았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을 써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면 사회는 성장하고 사람들은 행복하게 된다고 했다. 실로 이 경제인 개념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게만 하면 사람들의 불평등쯤은 감내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 경제지상주의가 새로 도래할 전환기 이후의 다원화된 사회에도 정당하게 작동할 것인지, 즉 정당한 사회를 만드는 원리가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풍요를 저급한 가치인 것처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성장이 사람의 정신적 풍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념의 산물이며, 우리가 절대빈곤에서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한 것은 바로 시장 자본주의의 덕이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에 비해 자본주의는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자유의 속성을 그 안에 품고 있다는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공황 등 사람들의 평등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이 자본주의적 가치는 자주 곤경에 처한다.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유럽의 1930년대를 보면 현재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결과 150 여 년 간 지속되어 온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마르크스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절대주의 등 온갖 ‘이즘’에 빠져들었다.

드러커는 그의 초기 저술 ‘경제인의 종말’에서 서구 사회가 파시즘 전체주의에 빠져드는 과정을 분석했다. 드러커에 의하면, 오랫동안 사람들의 신념으로 자리 잡아 온 중상주의적 ‘경제인의 개념’이 자유와 평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에 실망한 대중은, 설상가상으로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극심한 실업이 발생하자 자본주의 대신에 일순간에 이 난국을 진정시킬 비법을 갈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대신 사회적 진공상태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비법이 바로 파시즘 전체주의라는 ‘폭탄’이던 것이다.

파국을 막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행동은 없이 좌와 우로 나뉘어 완강히 저항만을 할 뿐이었다. 이는 현재의 우리 사회와 우려스럽게도 매우 닮은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순수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첨예한 갈등으로 사회가 파국을 맞게 될 가능성보다 이념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한 논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논의되고 있는 중도실용주의란 경제지상주의로 치달아 왔던 그동안의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이 핵심내용이 되어야 한다. 즉 중도실용주의는 자본주의의 강점에다가 ‘기능하는 사회’라는 핵심적 요건인 ‘자유와 평등’이 잘 결합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록 경제성장이 다소 더디더라도 사회 구성원이 총체적으로 좀 더 화합하고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방향전환을 말한다.

한마디로 중도실용주의의 핵심 가치는 경제지상주의를 넘어 ‘도덕적인 규범이 살아 있는’ 시장 자본주의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윤 추구와 아울러 실업 문제 등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기업가, 지나친 보수의 격차는 사회 갈등의 원인임을 자각하고 양보할 줄 아는 전문가 그룹과 경영자층,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사회를 지탱할 생산성을 내는 책임 있는 근로자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중도실용주의가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중도실용주의는 다가오는 전환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적용될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담는 그릇이 되었으면 한다.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2009. 7. 13

경제위기 처방의 빠진 연결고리 – 기업가정신

지난 해는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가 전세계를 덮었던 한 해였다. 여러 전망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경제위기의 한파는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아직 진행 중이다. 흔히 이번 경제 위기를 1930년대의 대 공황에 견주기도 한다. 그만큼 경제불황의 골이 깊다는 것인데, 실제로 주위를 돌아 보면 갑작스런 경제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의 위기에 직면하는 사람들이 차츰 많아지고 있다.

경제위기의 파고가 높다 보니 그 처방에 대해서도 각양각생의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시경제적 처방들과 공공 사업을 통한 단기적인 일자리 만들기 같은 시책들이 왠지 임시방편과 같이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위기가 대공황에 비견될만한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서 오늘날의 경제위기가 내포한 문제와 근본적인 처방에 대해 80년 전 대공황 시대의 역사를 통해 배울 필요가 있다.

80년 전 서구의 대공황과 오늘날의 금융위기의 원인은 다르지만 그 결과 사람들이 믿어 왔던 사회경제시스템에 실망하고 좌절에 빠졌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동일하다. 1930년대 말의 유럽은 전쟁과 대공황의 여파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절망했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때와 닮아 가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고, 집세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이렇게 경제 불황이 심해짐에 따라 사회 속에는 적절한 역할과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대중이 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 전의 미네르바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엉뚱한 선동에도 휩쓸리는, 마치 수용소 집단과도 같은 군중의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이 경제불황의 최대 문제점이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 문제를 다룬 바 있는데, 우리는 드러커의 저술을 통해서 오늘의 경제위기가 제기하는 문제의 의미와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드러커는 1939년 자신의 첫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에서 경제공황과 파시즘 전체주의의 발흥을 분석하면서,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에서 자주 공격 받는 이슈에 대해 진단했다. 이 책에서 드러커는 당시의 유럽 사회의 모습을, “국수주의적 긴장과 국제적 혼란 속에서 서구의 시민들은 전체주의를 혐오하면서도 서구문명의 자기파괴적인 무능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전체주의에 빠져들었다.”라고 요약한다.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파시스트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던 것이다. 모든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당장의 절망감에서 벗어나고 싶게 하는 상황은 이렇게 역사를 바꿀 정도로 파괴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서 미국이 비켜 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과학적 관리법이 태동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건너오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기업 공장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프레더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고 보급함으로써 생산성은 50 배나 증가했고, 몇 년 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급속하게 중산층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굳이 혁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도 살만한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제대로 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기업가와 근로자들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기업을 일으켰으며 40년 만에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점을 높이 산 드러커는 어느 벤처 잡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의 최고 실천자는 바로 한국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자면, 이번 경제위기의 해법도 기업가정신의 재정립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위기를 근본적으로 탈피한 후 맞을 새 시대는 사회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윤리적 기업가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윤리적 기업가는 우선 경쟁력을 철저히 갖춰 고용능력과 사회를 지탱할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며, 더 나아가 여력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이다. 또한 종업원의 참여로 진정한 기업시민 의식을 일깨우고, 분식회계와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는 기업이다.

국난 앞에 의병으로 나서 싸웠던 조상들과 같이 오늘의 경제 국난을 극복할 전위대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되어야 한다. 희망컨대 한국의 기업들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수가 지금의 두 배쯤으로 늘어난다면 우리가 처한 실업 문제를 비롯한 경제 위기는 저절로 해소되고 선진국형 경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인 해결책이 늘 그렇듯이 이 처방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적용 가능하다. 전제조건이란 바로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해 주고 기업가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를 말한다. 예컨대 기업가가 좀 더 경쟁력 있게 일할 여건을 온 나라가 합심해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탱할 부(富)를 창출하고 고용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인정은커녕 오히려 적대시 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사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은, 환율의 방어나 금리 조정, 그리고 단기적인 일거리를 창출하는 온갖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경제정책들보다 오히려 오늘의 경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임은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경제위기에 대한 단기적 처방에 묻혀서 철저히 누락되어 있다.

2009. 1. 29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외고 문제의 핵심은 공교육의 경쟁력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외고에 대한 논의를 보면 초점이 잘 못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고가 나름대로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 외고에 입학하려는 경쟁을 심화시키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정부가 억제하려고 하는 사교육비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것이 ‘외고 폐지론’의 대체적인 논거인 것 같다. 이런 논의를 보면 예전에 고등학교의 평준화를 위해 무시험 진학 제도로 바꿈으로써 전국 각지에 자리 잡았던 명문고들이 일거에 없어졌던 역사가 떠오른다. 대개 이런 식의 대증적 처방은 문제를 해결한다기 보다 악화시키게 된다. 나름대로 특출하게 발전한 학교를 성장하도록 돌봐주지는 못할망정 싹을 없애 버리는 것이 과연 우리의 교육 정책이 되어야만 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문제는 전반적인 공교육의 비능률에 있는 것이지 외국어고등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공교육의 어두운 단면을 보이는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칭 명문고로 알려진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선생님의 수업은 안 듣고 학원 진도에 맞춰 다른 책을 꺼내 놓고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전통적인 사제의 도를 떠올리기도 민망하게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교 학부형이 될 누구든 붙잡고 물어도 이런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도전해야 하고, 교사도 열심히 준비해야만 제대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살아 있는’ 학교를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이런 단적인 예를 보더라도, 최근 외고의 해법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키운 학교를 없애는 데 잇는 것이 아니라 침체되어 있는 공교육의 경쟁력을 올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교육 행정의 문제는 수많은 요인들이 인과관계로 얽혀 있고, 이해가 다원화 되어 쉽사리 유일한 해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대증적 요법은 늘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므로 더디더라도 근본 문제를 공략하는 길만이 올바른 방향이다. 외고 문제도 교육을 하나의 산업 현상으로 보고, 그 속에서 공교육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즉 공교육이 사교육과 정면으로 경쟁해서 우위에 서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근본 해법 중에는 중고등학교 교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우선순위에 포함될 수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충분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밤 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현행 임용고사 제도는 유능한 인재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임용고사 점수가 곧 유능한 교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직책도 마찬가지지만 유능한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유능한 인재의 풀(pool)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교사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사범대학에 들어가면 이들에 대해서는 졸업과 동시에 우선 교사로서 임용했기 때문에, 애초에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며 사명감을 갖고 사법대학에 진학하려던 우수한 인재를 유인하던 동기부여 효과가 있었다. 현재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비 사범 계 대학의 문제제기에 따라 지금은 학과를 불문하고 연 1 회 실시하는 임용고사를 거쳐 성적 순으로 교사를 채용한다. 결과적으로 사범대학을 나왔어도 임용고사에 합격하리라는 보장이 없게 되었다. 차제에 옛 제도를 복원하여 사범대학 졸업자는 교사 임용을 보장하는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면 오늘날의 취업난과 교원 임용고사의 극심한 경쟁률로 미뤄볼 때, 교사 직에 사명감을 갖춘 유능한 인재들이 ‘스승의 길’을 걷고자 몰려들 것이고, 공교육은 사교육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2009. 10. 29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2010년 1월 4일 월요일

융합기술시대의 인재육성과 경력개발

현재 우리는 산업경제로부터 지식경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지식사회가 한층 심화되면서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 등 신기술이 서로 융합되어 상승작용을 하는 융합기술시대로 이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국가경제를 지탱할 신산업도 이런 영역에서 태동할 것이다. 따라서 전환기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고, 또한 그 때 활약할 인재를 육성하는 일은 국가적 이슈로 다루어야 한다.
이 시대의 주역이 될 인재는 종래의 산업형 인재와는 다른 진정한 ‘지식근로자’가 되어야 한다. 드러커에 의해서 정의된 이 지식근로자는 자신의 세분화된 전문분야에서 깊은 전문지식을 갖고 자신의 일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식근로자는 혼자가 아니라 조직에 소속되어 다른 전문가들과 협력하며 일할 때에만 생산적이 될 수 있다.
이런 배경에 따라 도래하는 융합기술시대에 한국의 국가 경제를 다시 한 번 도약시킬 수 있는 지식 인재군은 크게 다음 세 그룹에서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글로벌 경영능력을 갖춘 경영자가 요구된다. 이들은 혁신을 통해 자신의 기업을 고도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지도자급 인재다. 이런 인재의 예로서 도산 위기의 노키아를 세계 제일의 회사로 만든 요르마 올릴라, GE의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키운 잭 웰치 같은 이들이 있다. 이들 글로벌 경영자들은 전세계에 사업장을 갖고서 매출의 대부분을 자국이 아닌 전세계를 상대로 올리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직원 시절부터 리더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경제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워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둘째, 두뇌형 고부가가치 기술자의 양성이 필요하다. 이는 대체로 이공계 대학의 커리큘럼에 의해 양성되는 엔지니어 직무군을 말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 대학들이 양성해 내고 있는 분야는 주로 투자주도형 장치 산업에 공급할 인력들인 반면, 앞으로 폭발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두뇌형 기술 분야들, 그리고 그 융합기술에 대한 대비는 절대 부족하다.
셋째, 테크놀로지스트(technologist) 양성이 필요하다. 테크놀로지스트는 숙련기능과 전문지식이 합쳐진 기능전문가 직업군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계나 자동차 등의 제작, 가공 및 A/S 기사, 종합병원의 첨단 기기를 다루는 각종 의료 기술자, IT 분야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및 멀티 미디어 콘텐트 개발자 등 종래 기능인의 숙련과 정규교육에서의 지식이 합쳐진 직무를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수요는 지식경제가 심화되면서 그 다양성과 비중 면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전술한대로 대체로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위의 세 분야의 지식근로자들을 얼마나 충분하고도 탁월하게 육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직업관은 여전히 자신의 적성 불문하고 의대를 고집한다든가, ‘사자(士字)’ 직업을 갖기 위해 고시에 올인하는 식이다. 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수 많은 젊은이들이 여러 해를 고시 준비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커다란 낭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 시대의 인재는 수험서가 아니라 일과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결론적으로, 만약 자신의 적성이 허락한다면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위의 세 분야를 자신의 형편에 맞게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할 만 한다. 만약 당장 이공계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된다면 우선 테크놀로지스로서의 과정을 이수하고, 즉시 기업 등 조직체에 취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은 평생학습의 시대이며, 이는 먼저 자신의 경력을 시간 공백 없이 시작하고, 인생 계획에 따라 후에 여건에 맞춰 대학이든 대학원이든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시대임을 시사한다. 경력을 쌓다 보면 적절한 시기에 사업기회를 발견하여 스스로 창업 경영자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2009. 11. 17

[내생각은…] 자이툰 부대 철군 득보다 실이 많다


[중앙일보] [오피니언] 내 생각은…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6.12.20



최근 이라크에 파병돼 있는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논란이 됐던 철군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됐다. 자이툰 부대는 현재 쿠르드 족이 사는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지역에서 모범적인 재건.복구 활동을 해 주민의 호응을 받고 있다. 2년여 파병 기간에 60여 개 초.중등학교를 지어 어린이 교육을 부활시켰고, 현지인을 위한 새마을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 기술교육센터에는 중장비 운전, 제빵, 자동차 수리, 가전제품 수리 등의 과정이 개설돼 있다. 자이툰 부대 병원은 부대원 외에도 하루 150명 이상의 현지인을 진료한다. 이런 민사작전은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국.영국 등 동맹국 사이에서도 모범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는 2년 반 전 3800명이었던 자이툰 부대 병력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내년 4월에는 1200명 수준으로 감축한다고 한다. 현재 정치권.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자이툰 부대 파병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점을 들어 내년에는 철군 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병과 철군의 의사결정은 좀 더 전략적이며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다. 이라크 파병은 우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의무와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있다. 6.25 전쟁 때 동맹국들의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게 됐다.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 어려울 때 신세 진 일이 있다면 후일 능력이 생겼을 때 갚아야 한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적극 나설 때가 됐다. 그 결과 이라크 재건 과정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국제사회는 한국이 이라크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앞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 수행해야 하는 우리 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자이툰 부대는 사단급 병력으론 월남전보다 먼 최장거리의 해외 파병이다. 이는 우리 군에 육.해.공 합동작전과 전시 군수지원, 동맹국과의 연합작전 수행에서 실전경험 축적이란 학습의 장을 제공한다. 더욱이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군수 지원 없이 한국군 독자적으로 이뤄진 첫 해외 파병이다. 6개월마다 파병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1만5000여 명(연인원)의 장병은 전술적 감각과 연합작전 능력 면에서 국군 혁신에 선도자 역할을 할 것이다. 세상 일에는 명분과 실리가 공존한다. 국가든 개인이든 처신에 따라 둘 다 챙길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다. 정부는 자이툰 부대 파병을 결정할 때 너무 반대여론 눈치만 보다 결정 시기를 놓치고, 파병지역을 선정할 때도 위험지역을 지나치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파병하면서도 동맹국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일본이 즉각적인 반응으로 동맹 외교를 한층 강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 후 2년 반 동안 일본이 미국과 가까워진 거리만큼 우리는 멀어졌다. 이런 실패를 철군 과정에서도 반복할 수는 없다. 이라크 파병 때와 같이 철수에서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원활하지 못한 대미 관계에서 그나마 이라크 파병이 갖고 있는 긍정적 효과를 결코 소홀히 취급해선 안 된다.


'에스컬레이터 두줄 타기' 혼란

조선일보 [오피니언] 입력 : 2008.01.25 22:44 / 수정 : 2008.01.26 05:04
관리편의보다 시민편의가 우선 홍보 전에 사회적 합의과정 필요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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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퇴근 때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에는 노선에 따라 지상으로 올라오는 거리가 꽤 길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지하철 승강장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포스터와 안내 문구가 붙어 있어 영 신경이 쓰인다. 문제의 안내문은 '에스컬레이터 두 줄타기, 올바른 안전문화의 시작입니다'라는 것이다. 이 글 밑에는 한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1, 2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통째로 나란히 가로 막고 서 있는 사진이 나와 있다. 요컨대 종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관행은 왼편은 걷는 사람을 위해 비워 두고 오른편에는 천천히 가도 되는 사람들이 서 있는 방법이었는데, 이 관행이 틀렸으니 포스터의 그림처럼 걷는 사람의 길을 가로 막고 나란히 두 줄로 서 있으라는 내용의 포스터다. 포스터 맨 아래를 보니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와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주관 기관으로 표시되어 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왜 이런 포스터가 나붙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의 한쪽에만 서 있고 한쪽은 비워 두거나 그쪽으로만 걸어 가다 보니 좌우 균형이 안 맞아서 기계 고장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므로 안전과 수리비 절감을 위하여 두 줄로 나란히 서서 타라는 것이리라. 이 포스터 때문인지 요즘에는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조금씩 눈에 띄고, 그런 사람에게 핀잔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더러 보게 된다. 이 안내 문구는 적잖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수년에 걸쳐 '급한 분을 위해 왼쪽은 비워 주세요'라는 캠페인으로 어렵사리 정착시킨 에스컬레이터 타기 관행을 원위치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 관행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하나의 에티켓으로 지켜지는 것인데, 이것을 어느 단위 기관의 이해관계나 경영 수지 개선을 위해 바꾸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둘째, 더욱 문제인 것은 1~4호선은 여전히 '한 줄 타기'를 홍보하고 있고, 5~8호선에서만 '두 줄 타기'를 홍보한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같은 도시철도공사 간에도 서로 의사 소통조차 하지 않은 채 한 두 명의 담당자가 탁상공론을 하다 낸 제안을 승인한 것 같은 인상이 짙다. 요즘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 사례와 같이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불합리한 규제에 대한 말들이 많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두 줄 타기' 또한 공공 기관이 별 고민도 안 한 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어렵사리 정착시킨 관행에 규제를 가한 사례로 볼 만하다. 이 포스터를 붙인 사람들은 일을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보다는 쉽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이 문제라면 좀 더 튼튼하게 설계하면 된다. 물론 '강한 설계'에 따라 시설비는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 정착된 관행을 혼란스럽게 하고, 글로벌 에티켓을 지키지 못하게 시민을 오도하는 것은 높아진 승강기 가격보다 더 큰 사회적 손실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안전과 비용을 위해 '두 줄 타기'가 진정한 해답이라면 좀 더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 공인된 기관이 이런 캠페인을 하길 바란다. 왜냐 하면 에스컬레이터는 비단 지하철에만 이용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처에서 이용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지하철에서는 '두 줄 타기'를 하고, 백화점·놀이공원에서는 '한 줄 타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이 포스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경제위기를 넘어 새로운 기회로 - 드러커 탄생 100주년에 부쳐

문근찬 < 한국사이버대 교수·경영학 > kcmoon@mail.kcu.ac 2009. 4. 20


금년은 피터 드러커가 난 해로부터 100주년 되는 해다. 드러커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태어나 지난 2005년 말96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의 100년간에 걸쳐 현대 산업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형성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산업사회 속의 핵심 기관인 기업과 경영에 대해 통찰로 가득한 저술들을 펴 냈다. 그가 1939년 첫 저술인 ‘경제인의 종말’을 쓸 당시 유럽은 대공황으로 인한 좌절 속에 절대주의의 광풍에 휘둘리기도 했는데, 이번 경제위기는 그 범위와 규모가 큰 점에서 80 년 전의 대공황에 견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의 규모보다도, 드러커가 생전에 암시한 바에 의하면 이번 경제위기는 어쩌면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온 시장 자본주의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전환기’일지도 모른다.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지난 200년간 계속된 경제지상주의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전환기에 대해 서술하면서, 전환기 이후의 사회는 그 이전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 될 것이며, 고개 이전과 이후는 마치 딴 세상인 것처럼 역사의 단절이 일어난다고 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장의 단기적 경제대책보다도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전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드러커는 그의 초기 저술인 ‘경제인의 종말(1939)과 ‘산업인의 미래(1942)’에서 새로 탄생한 대기업 중신의 산업사회가 어떻게 하면 정당성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인가를 끊임 없이 고민했다. 이 두 저술에서 드러커는 자본주의가 침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서, 자본주의가 인간의 사회•경제적 삶을 통합시키는 절대 가치에 복속되어 있기 때문이라 했는데, 그 가치란 바로 ‘경제인(economic man)’이라는 세속적 원리였다. 경제인의 원리는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열심히 사적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이 경제지상주의에 의해 사회적 부를 창출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신 자본주의에서 윤리는 증발했고, 옹졸한 사익의 원심력은 사회를 공동체적으로 결집시켰던 구심력을 산산이 파괴하는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드러커는 자본주의의 시장 메커니즘이 다른 이념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보면서도, 실업이나 계급투쟁이나 사회적 소외라는 취약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구조적 대응방안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경제인의 원리’에 결부되어야 할 ‘정신적 가치’의 문제이다.
현재는 드러커가 늘 염려했던 문제가 한꺼번에 표면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공공이익을 돌보지 않는 사익의 추구,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배분의 정의가 실종된 채로 심화되는 양극화의 문제, 끊임 없이 요구만을 하는 노동조합 등은 경제공황과 맞물려 사람들을 좌절하게 한다. 그런데 좌절한 대중은 80년 전의 유럽사회에서와 같이 불합리한 정치세력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며, 또한 대중은 그런 정치세력에 의한 최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일찍이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파시즘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번 전환기를 위기가 아닌 새 시대를 맞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모습에 대해 드러커는, 단지 성장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기업가의 시대,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사회에 공헌하는 지식근로자의 시대가 되어야 함을 암시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파견의 품격'

2009. 6. 30 조선일보 시론,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

비정규직 법안의 개정을 두고 온 나라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 논쟁은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 단지 응급처방 내지 이념적 주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면 요즘 정치권과 여야의 주장보다는 차라리 전에 방영되었던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 드라마는 사회의 변화 속에 현실로 자리 잡은 파견사원이라는 비정규직 문제의 애환과 대처를 개인과 사회의 차원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파견직 오오마에 하루코는 시급 3000엔의 특A급 수퍼 파견직원이다.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고 정규직 사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파견사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규 직원보다 일 잘하는 파견사원은 어찌 보면 사회를 변모시키는 주역일지도 모른다.사회현상은 일종의 생태계와 같이 다양한 요인들이 얽혀 현재의 상황으로 표출된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도 따지자면 노조 및 경직된 고용의 관행과, 이를 비켜가려는 조직의 자본주의적 합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단 정규직 직원을 채용하면 4대 보험을 비롯하여 온갖 비용의 원천이 되니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비정규직의 비중을 늘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지식경제로 이행되면서 사람들의 전문성은 다양하고도 깊어져서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같이 능력 있는 비정규직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이런 문제를 두고 비정규직을 시한부로 없애라는 식의 법을 제정한 것은 겉으로는 차별받는 비정규직을 보살핀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열심히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며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대부분의 주역을 '나쁜 사람'으로 모는 이념적 발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늘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사회 현상의 정당성 문제를 단숨에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기업 내부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진정 기업의 경쟁력은 종업원의 역량에서 나오므로 종업원은 회사의 자원이다. 따라서 기업으로서는 당연히 종업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여 장기적으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 되도록 대접해야 한다. 그러나 종업원 관계를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골치 아픈지 아는 기업으로서는 핵심 역량과 밀접한 종업원 외에는 파견사원으로 채우는 방식에 유혹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이는 결국 인사관리라는 골치 아픈 일을 외주화하는 전략으로서 기업 경쟁력의 한 방안이 될 수도 있다.과거에 비정규직은 말단 서기 업무, 전화 교환원, 전표 기입을 위한 경리 등 정규직을 보조하는 업무에 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거의 모든 직종에 다양한 파견사원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예컨대 공장을 착공하여 시험 가동할 때까지만 맡아줄 공장장을 계약직으로 채용할 수도 있고, 외국과의 합작 협상을 위하여 법률 고문을 채용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은 단지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념적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로 우리가 모르는 새에 기업 조직은 압도적인 비율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아마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물론 비정규직의 확산이 사회 정의라는 차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사원은 별 실력 차이도 없는 정규직 사원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보상을 받으면서 계약 해지의 두려움에 늘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현상의 불합리한 점을 법제화로 일거에 어찌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면서 현재로부터 차근차근 해법을 찾아 나가는 자세, 이것이 진정한 정치다.

위기극복 선봉대는 기업가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9. 2. 9 한국경제
각종 경제대책 '희망' 주기엔 미흡
기업가정신 북돋는 여건 마련을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몰아친 위기의 한파가 전방위에 걸쳐 진행 중이다. 위기의 파고가 높다 보니 그 처방에 대해서도 각양각색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시경제적 처방과 공공 사업을 통한 단기적인 일자리 만들기 같은 방안들이 왠지 임시방편과 같이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80년 전 서구의 대공황과 요즘 경제위기의 원인은 다르지만 그 결과 사람들이 믿어 왔던 사회 · 경제시스템에 실망하고 좌절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930년대 유럽은 전쟁과 대공황의 여파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대부분의 시민이 절망했다. 오늘날 우리 상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때와 닮아 가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는 계속 늘고 있고,집세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 전의 미네르바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엉뚱한 선동에도 휩쓸리는,마치 수용소 집단과도 같은 군중의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파시스트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서 미국이 비켜 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과학적 관리법이 태동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건너오는 노동자를 고용해 대기업 공장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프레데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고 보급함으로써 생산성은 50배나 증가했고,몇 년 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급속하게 중산층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굳이 혁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도 살 만한 풍요로운 세상이 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제대로 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기업가와 근로자들은 6 · 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기업을 일으켰으며 40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경제위기의 해법도 기업가정신의 재정립에서 찾아야 함은 물론이다. 위기를 근본적으로 탈피한 후 맞을 새 시대는 사회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윤리적 기업가의 시대가 돼야 한다. 윤리적 기업가는 경쟁력을 철저히 갖춰 고용능력과 사회를 지탱할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며,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이다. 국난 앞에 의병으로 나서 싸웠던 조상들과 같이 오늘의 경제 국난을 극복할 전위대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돼야 한다. 한국의 기업들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수가 지금의 두 배쯤으로 늘어난다면 우리가 처한 실업 문제를 비롯한 경제 위기는 저절로 해소되고 선진국형 경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인 해결책이 늘 그렇듯이 이 처방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적용 가능하다. 전제조건이란 바로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해 주고 기업가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를 말한다. 예컨대 기업가가 좀 더 경쟁력 있게 일할 여건을 온 나라가 합심해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탱할 부(富)를 창출하고 고용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역할에 대해 인정은커녕 오히려 적대시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사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은,환율의 방어나 금리 조정,그리고 단기적인 일거리를 창출하는 온갖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경제정책들보다 오히려 오늘의 경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임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조정 없는 혁신은 ‘말잔치’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8. 8. 21 동아일보


언제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거는 슬로건은 ‘변화와 혁신’이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 없이 혁신을 표방했다. 그러나 출범 초기에 미국산 쇠고기로 촉발된 혼란의 여파로 새 정부의 혁신은 아직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혁신이란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 환경 속에서 당연히 수행해야 할 과업이므로 당위성에 대해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혁신의 세부사항에 들어가면 적지 않은 이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감과 저항감을 드러낸다. 혁신은 관행과 특권을 포기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혼동 속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혁신의 어려움이 있다.노무현 정부를 돌이켜보자. 지난 5년간 추진했던 정부 혁신은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않는 소프트웨어적인 혁신이었다. 일하는 방식, 조직문화, 윤리경영이 혁신의 주된 메뉴였던 반면 조직의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라든지 조직 구조의 변화와 슬림화, 혹은 필요 없는 규제를 과감하게 제거하는 등의 구조적 혁신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혁신활동은 조직 효율 내지 조직 구조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혁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증거를 든다면,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자체 평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재직하는 직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또 혁신 분야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기관이 정작 경영성과는 극히 부진한 상반되는 결과를 드러냈다.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혁신은 실질적인 산출과 성과보다는 다소 선전적인 수사와 과정의 국면에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혁신의 단계에서 표출되기 쉬운 구성원의 거부감과 큰 저항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혁신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국민과 기업에는 진정한 가치의 창출보다는 규제의 강화와 세금 부담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결과를 빚어냈다.규제 개혁, 실용과 성장을 비전으로 내건 새 정부는 당연히 그 짐을 덜어내는 작업을 혁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혁신 과정에서 겪게 될 저항과 반대는 소프트웨어적 국면에서 자주 언급되는 ‘혁신 피로감’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조직적 저항이 따를 수 있다. 여기에 새 정부 혁신이 가진 진퇴양난의 어려움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혁신과 변화에 대해 제시한 주장을 유용하게 되새겨볼 수 있다. 드러커는 모든 기획의 첫 단계는 모든 활동, 모든 제품, 모든 과정 또는 시장에 대해서 이렇게 물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이 일이 없었다면, 그래도 지금 이 일에 뛰어들 것인가?”만약 대답이 노(No)라면 그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혁신의 출발점은 방만한 자원의 배분과 낭비를 제거하는 일, 즉 ‘체계적인 포기’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늘 강조했다. 조직이든 국가든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 있게 정비하는 일을 도외시한 혁신은 언제나 ‘말뿐인 혁신’이 되고 효용성이 고갈된 일과 규제를 다 끌어안는 혁신이 되기 때문이다.규제 개혁과 효율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모색하려는 새 정부의 혁신은 우리의 재도약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치로 내거는 혁신은 구조조정을 수반한 실질적인 혁신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난관을 남겨두고 있다.변화는 늘 위험을 무릅쓰기 마련이다. 위험을 선택하길 거부하는 자에게 기회는 없다. 이 점을 국민에게 겸손하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설득하는 전략과, 혁신에 수반되는 당사자의 희생과 헌신을 정부가 얼마만큼 끌어낼 수 있는지에 따라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경제인의 종말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7. 10. 31 한겨레신문 기고



‘경제인’(이코노믹 맨) 개념은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열심히 사적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돼 있다는 것으로, 현대 시장경제의 원리를 잘 대변하고 있다. 250여년 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경제행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복지에 기여하게 된다고 함으로써 경제인의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유럽 역사에서 보듯 경제인 개념은 만능이 아니었다. 이로써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대형 기업체들이 생겨난 데까지는 고금에 없는 역사적 성과였지만, 그 부작용으로 노동자들이 소외되었다. 여기서 ‘소외’란 말은 같은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태, 곧 노예 상태를 조금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다. 경제적 발전이 자동적으로 자유와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 반작용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나왔다. 더불어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로 돌변해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유럽 근대사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능하는 사회’란, 첫째, 국가는 구성원이 나름의 몫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둘째,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존엄성 내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당시 유럽 사회의 소외된 노동자들은 자신을 노예화하는 사회를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의 두 요소가 동시에 만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 또는 성장 없이 평등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결코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않은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한마디로, 이 둘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전일적 요소라고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유럽 사회가 겪었던 대규모 시민혁명이나 전체주의 혁명 같은 것을 겪지 않았지만, 지난 10여년 ‘성장이냐, 분배냐’,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 ‘시장경제냐, 규제냐’ 같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과거 유럽 나라들이 겪었던 전체주의 망령에 비하면, 이 정도 갈등은 큰 병을 막기 위한 예방접종 후의 미열과도 같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미열은 치명적인 병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걷도록 태어난 사람에게 난다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차원을 달리볼 줄 아는 ‘패러다임 전환’을 말한다. 앞서 ‘기능하는 사회’의 요건을 볼 때,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지난 세월의 이분법적인 논의가 아니라, 양극단의 관점을 아우르는 전일적인 사고와 비전을 가져야 함을 요구한다.
예컨대, 성장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이 제 몫을 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서 받는 박탈감을 치유하는 일에 ‘성장’ 못잖은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식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은 ‘양자 택일’ 논리가 아닌 ‘함께’ 논리를 요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 번영, 시장경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시 발전, 자본과 노동의 상생 커뮤니티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 혹자는 이상론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보건대, 이런 생각을 시민 두루 공유하면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할 때는 전체주의를 거쳐 몰락하는 사회로 가는 것을 보았다. 피터 드러커 박사가 60여년 전에 저술한 <경제인의 종말>이 이제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할 때다.

피터 드러커가 본 한국

2005-11-18 18:04 문근찬 <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박사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 1909년 11월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태어났으니 일주일 부족한 만 96세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피터 드러커는 GM에 대한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쓴 '기업의 개념'이란 저서를 통해 현대 경영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고전 경제학에서 중시됐던 노동과 자본의 가치가 떨어지고 지식이 경제의 기준이 되는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미래관을 제시함으로써 지식경영의 장을 열었고,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경제 성과의 차이로 인해 소련이 붕괴될 것을 실제 역사로 증명되기 10년 전에 예언하는 등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혀왔다. 1939년 30세 때 첫 저서 '경제인의 종말'을 발표한 뒤 '경영의 실제''단절의 시대''미래 경영''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 수많은 저술은 우리에게 시대를 초월한 깨달음을 갖게 한다.그는 한국을 마음 속 깊이 인정한 몇 안 되는 서구 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드러커에게 미국의 한 신문기자가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뛰어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물었더니,그는 "말할나위 없이 한국"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한국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하게 된 데는 배경이 있다. 드러커는 한국동란이 끝난 후,1954년께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국의 교육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우리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가 본 것은 불모의 황폐한 국토에,산업이라야 그저 농업밖에 없는 '농업국가 한국'의 모습이었다. 그런 한국이 불과 40년 만에 조선 철강 전자 등 산업 강국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세계경제의 당당한 일원으로 떠오르자 드러커 박사는 경탄해 마지 않았고,한국이야 말로 자신이 평생 동안 신념을 가지고 주창해 온 자유시장경제와 기업가정신의 성공사례로 여겼던 것이다.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현대사회는 지식과 지식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경영혁명의 사회다. 사회 전반에 걸쳐 스며든 '효과적인 경영'만이 자유세계를 지탱케 하고,독재자와 전체주의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단 하나의 대안이며,여기에 타협은 있을 수 없다고 그는 역설한다.그의 가르침은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요컨대,드러커가 칭찬해 마지 않던 한국이 그동안 이루었던 성장과 번영을 계속 구가하기 위해서는 오직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한국의 번영은 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고도 한국에서 경쟁력을 갖고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가,그리고 예비 기업가들이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성취와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새로운 기업을 세우는 창업을 활발히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한국의 성취를 인정해 준 드러커 교수의 명복을 빈다.

Drucker 유산의 재창조 - Druckerism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문근찬 2010. 1. 4

드러커는 경영 역사에서 교훈을 이끌어낸 사회역사학자였다. 또한 드러커의 저술들은 전통적인 학문적 경계를 넘어선 한 사상가의 증언이며,그의 책은 한정적인 사고를 하는 우리들 혼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올바른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드러커는 21세기 역사의 전개방향을 짐작케 하는 통찰력을 보여줬으며 그의 통찰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빛을 발한다.

이제 드러커를 넘어 드러커주의(from Drucker to Druckerism)로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