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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4일 월요일

융합기술시대의 인재육성과 경력개발

현재 우리는 산업경제로부터 지식경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지식사회가 한층 심화되면서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 등 신기술이 서로 융합되어 상승작용을 하는 융합기술시대로 이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국가경제를 지탱할 신산업도 이런 영역에서 태동할 것이다. 따라서 전환기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고, 또한 그 때 활약할 인재를 육성하는 일은 국가적 이슈로 다루어야 한다.
이 시대의 주역이 될 인재는 종래의 산업형 인재와는 다른 진정한 ‘지식근로자’가 되어야 한다. 드러커에 의해서 정의된 이 지식근로자는 자신의 세분화된 전문분야에서 깊은 전문지식을 갖고 자신의 일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식근로자는 혼자가 아니라 조직에 소속되어 다른 전문가들과 협력하며 일할 때에만 생산적이 될 수 있다.
이런 배경에 따라 도래하는 융합기술시대에 한국의 국가 경제를 다시 한 번 도약시킬 수 있는 지식 인재군은 크게 다음 세 그룹에서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글로벌 경영능력을 갖춘 경영자가 요구된다. 이들은 혁신을 통해 자신의 기업을 고도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지도자급 인재다. 이런 인재의 예로서 도산 위기의 노키아를 세계 제일의 회사로 만든 요르마 올릴라, GE의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키운 잭 웰치 같은 이들이 있다. 이들 글로벌 경영자들은 전세계에 사업장을 갖고서 매출의 대부분을 자국이 아닌 전세계를 상대로 올리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직원 시절부터 리더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경제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워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둘째, 두뇌형 고부가가치 기술자의 양성이 필요하다. 이는 대체로 이공계 대학의 커리큘럼에 의해 양성되는 엔지니어 직무군을 말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 대학들이 양성해 내고 있는 분야는 주로 투자주도형 장치 산업에 공급할 인력들인 반면, 앞으로 폭발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두뇌형 기술 분야들, 그리고 그 융합기술에 대한 대비는 절대 부족하다.
셋째, 테크놀로지스트(technologist) 양성이 필요하다. 테크놀로지스트는 숙련기능과 전문지식이 합쳐진 기능전문가 직업군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계나 자동차 등의 제작, 가공 및 A/S 기사, 종합병원의 첨단 기기를 다루는 각종 의료 기술자, IT 분야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및 멀티 미디어 콘텐트 개발자 등 종래 기능인의 숙련과 정규교육에서의 지식이 합쳐진 직무를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수요는 지식경제가 심화되면서 그 다양성과 비중 면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전술한대로 대체로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위의 세 분야의 지식근로자들을 얼마나 충분하고도 탁월하게 육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직업관은 여전히 자신의 적성 불문하고 의대를 고집한다든가, ‘사자(士字)’ 직업을 갖기 위해 고시에 올인하는 식이다. 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수 많은 젊은이들이 여러 해를 고시 준비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커다란 낭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 시대의 인재는 수험서가 아니라 일과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결론적으로, 만약 자신의 적성이 허락한다면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위의 세 분야를 자신의 형편에 맞게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할 만 한다. 만약 당장 이공계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된다면 우선 테크놀로지스로서의 과정을 이수하고, 즉시 기업 등 조직체에 취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은 평생학습의 시대이며, 이는 먼저 자신의 경력을 시간 공백 없이 시작하고, 인생 계획에 따라 후에 여건에 맞춰 대학이든 대학원이든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시대임을 시사한다. 경력을 쌓다 보면 적절한 시기에 사업기회를 발견하여 스스로 창업 경영자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2009. 11. 17

[내생각은…] 자이툰 부대 철군 득보다 실이 많다


[중앙일보] [오피니언] 내 생각은…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6.12.20



최근 이라크에 파병돼 있는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논란이 됐던 철군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됐다. 자이툰 부대는 현재 쿠르드 족이 사는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지역에서 모범적인 재건.복구 활동을 해 주민의 호응을 받고 있다. 2년여 파병 기간에 60여 개 초.중등학교를 지어 어린이 교육을 부활시켰고, 현지인을 위한 새마을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 기술교육센터에는 중장비 운전, 제빵, 자동차 수리, 가전제품 수리 등의 과정이 개설돼 있다. 자이툰 부대 병원은 부대원 외에도 하루 150명 이상의 현지인을 진료한다. 이런 민사작전은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국.영국 등 동맹국 사이에서도 모범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는 2년 반 전 3800명이었던 자이툰 부대 병력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내년 4월에는 1200명 수준으로 감축한다고 한다. 현재 정치권.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자이툰 부대 파병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점을 들어 내년에는 철군 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병과 철군의 의사결정은 좀 더 전략적이며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다. 이라크 파병은 우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의무와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있다. 6.25 전쟁 때 동맹국들의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게 됐다.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 어려울 때 신세 진 일이 있다면 후일 능력이 생겼을 때 갚아야 한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적극 나설 때가 됐다. 그 결과 이라크 재건 과정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국제사회는 한국이 이라크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앞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 수행해야 하는 우리 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자이툰 부대는 사단급 병력으론 월남전보다 먼 최장거리의 해외 파병이다. 이는 우리 군에 육.해.공 합동작전과 전시 군수지원, 동맹국과의 연합작전 수행에서 실전경험 축적이란 학습의 장을 제공한다. 더욱이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군수 지원 없이 한국군 독자적으로 이뤄진 첫 해외 파병이다. 6개월마다 파병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1만5000여 명(연인원)의 장병은 전술적 감각과 연합작전 능력 면에서 국군 혁신에 선도자 역할을 할 것이다. 세상 일에는 명분과 실리가 공존한다. 국가든 개인이든 처신에 따라 둘 다 챙길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다. 정부는 자이툰 부대 파병을 결정할 때 너무 반대여론 눈치만 보다 결정 시기를 놓치고, 파병지역을 선정할 때도 위험지역을 지나치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파병하면서도 동맹국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일본이 즉각적인 반응으로 동맹 외교를 한층 강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 후 2년 반 동안 일본이 미국과 가까워진 거리만큼 우리는 멀어졌다. 이런 실패를 철군 과정에서도 반복할 수는 없다. 이라크 파병 때와 같이 철수에서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원활하지 못한 대미 관계에서 그나마 이라크 파병이 갖고 있는 긍정적 효과를 결코 소홀히 취급해선 안 된다.


'에스컬레이터 두줄 타기' 혼란

조선일보 [오피니언] 입력 : 2008.01.25 22:44 / 수정 : 2008.01.26 05:04
관리편의보다 시민편의가 우선 홍보 전에 사회적 합의과정 필요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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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퇴근 때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에는 노선에 따라 지상으로 올라오는 거리가 꽤 길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지하철 승강장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포스터와 안내 문구가 붙어 있어 영 신경이 쓰인다. 문제의 안내문은 '에스컬레이터 두 줄타기, 올바른 안전문화의 시작입니다'라는 것이다. 이 글 밑에는 한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1, 2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통째로 나란히 가로 막고 서 있는 사진이 나와 있다. 요컨대 종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관행은 왼편은 걷는 사람을 위해 비워 두고 오른편에는 천천히 가도 되는 사람들이 서 있는 방법이었는데, 이 관행이 틀렸으니 포스터의 그림처럼 걷는 사람의 길을 가로 막고 나란히 두 줄로 서 있으라는 내용의 포스터다. 포스터 맨 아래를 보니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와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주관 기관으로 표시되어 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왜 이런 포스터가 나붙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의 한쪽에만 서 있고 한쪽은 비워 두거나 그쪽으로만 걸어 가다 보니 좌우 균형이 안 맞아서 기계 고장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므로 안전과 수리비 절감을 위하여 두 줄로 나란히 서서 타라는 것이리라. 이 포스터 때문인지 요즘에는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조금씩 눈에 띄고, 그런 사람에게 핀잔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더러 보게 된다. 이 안내 문구는 적잖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수년에 걸쳐 '급한 분을 위해 왼쪽은 비워 주세요'라는 캠페인으로 어렵사리 정착시킨 에스컬레이터 타기 관행을 원위치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 관행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하나의 에티켓으로 지켜지는 것인데, 이것을 어느 단위 기관의 이해관계나 경영 수지 개선을 위해 바꾸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둘째, 더욱 문제인 것은 1~4호선은 여전히 '한 줄 타기'를 홍보하고 있고, 5~8호선에서만 '두 줄 타기'를 홍보한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같은 도시철도공사 간에도 서로 의사 소통조차 하지 않은 채 한 두 명의 담당자가 탁상공론을 하다 낸 제안을 승인한 것 같은 인상이 짙다. 요즘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 사례와 같이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불합리한 규제에 대한 말들이 많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두 줄 타기' 또한 공공 기관이 별 고민도 안 한 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어렵사리 정착시킨 관행에 규제를 가한 사례로 볼 만하다. 이 포스터를 붙인 사람들은 일을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보다는 쉽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이 문제라면 좀 더 튼튼하게 설계하면 된다. 물론 '강한 설계'에 따라 시설비는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 정착된 관행을 혼란스럽게 하고, 글로벌 에티켓을 지키지 못하게 시민을 오도하는 것은 높아진 승강기 가격보다 더 큰 사회적 손실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안전과 비용을 위해 '두 줄 타기'가 진정한 해답이라면 좀 더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 공인된 기관이 이런 캠페인을 하길 바란다. 왜냐 하면 에스컬레이터는 비단 지하철에만 이용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처에서 이용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지하철에서는 '두 줄 타기'를 하고, 백화점·놀이공원에서는 '한 줄 타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이 포스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경제위기를 넘어 새로운 기회로 - 드러커 탄생 100주년에 부쳐

문근찬 < 한국사이버대 교수·경영학 > kcmoon@mail.kcu.ac 2009. 4. 20


금년은 피터 드러커가 난 해로부터 100주년 되는 해다. 드러커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태어나 지난 2005년 말96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의 100년간에 걸쳐 현대 산업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형성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산업사회 속의 핵심 기관인 기업과 경영에 대해 통찰로 가득한 저술들을 펴 냈다. 그가 1939년 첫 저술인 ‘경제인의 종말’을 쓸 당시 유럽은 대공황으로 인한 좌절 속에 절대주의의 광풍에 휘둘리기도 했는데, 이번 경제위기는 그 범위와 규모가 큰 점에서 80 년 전의 대공황에 견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의 규모보다도, 드러커가 생전에 암시한 바에 의하면 이번 경제위기는 어쩌면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온 시장 자본주의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전환기’일지도 모른다.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지난 200년간 계속된 경제지상주의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전환기에 대해 서술하면서, 전환기 이후의 사회는 그 이전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 될 것이며, 고개 이전과 이후는 마치 딴 세상인 것처럼 역사의 단절이 일어난다고 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장의 단기적 경제대책보다도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전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드러커는 그의 초기 저술인 ‘경제인의 종말(1939)과 ‘산업인의 미래(1942)’에서 새로 탄생한 대기업 중신의 산업사회가 어떻게 하면 정당성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인가를 끊임 없이 고민했다. 이 두 저술에서 드러커는 자본주의가 침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서, 자본주의가 인간의 사회•경제적 삶을 통합시키는 절대 가치에 복속되어 있기 때문이라 했는데, 그 가치란 바로 ‘경제인(economic man)’이라는 세속적 원리였다. 경제인의 원리는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열심히 사적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이 경제지상주의에 의해 사회적 부를 창출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신 자본주의에서 윤리는 증발했고, 옹졸한 사익의 원심력은 사회를 공동체적으로 결집시켰던 구심력을 산산이 파괴하는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드러커는 자본주의의 시장 메커니즘이 다른 이념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보면서도, 실업이나 계급투쟁이나 사회적 소외라는 취약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구조적 대응방안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경제인의 원리’에 결부되어야 할 ‘정신적 가치’의 문제이다.
현재는 드러커가 늘 염려했던 문제가 한꺼번에 표면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공공이익을 돌보지 않는 사익의 추구,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배분의 정의가 실종된 채로 심화되는 양극화의 문제, 끊임 없이 요구만을 하는 노동조합 등은 경제공황과 맞물려 사람들을 좌절하게 한다. 그런데 좌절한 대중은 80년 전의 유럽사회에서와 같이 불합리한 정치세력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며, 또한 대중은 그런 정치세력에 의한 최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일찍이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파시즘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번 전환기를 위기가 아닌 새 시대를 맞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모습에 대해 드러커는, 단지 성장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기업가의 시대,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사회에 공헌하는 지식근로자의 시대가 되어야 함을 암시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파견의 품격'

2009. 6. 30 조선일보 시론,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

비정규직 법안의 개정을 두고 온 나라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 논쟁은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 단지 응급처방 내지 이념적 주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면 요즘 정치권과 여야의 주장보다는 차라리 전에 방영되었던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 드라마는 사회의 변화 속에 현실로 자리 잡은 파견사원이라는 비정규직 문제의 애환과 대처를 개인과 사회의 차원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파견직 오오마에 하루코는 시급 3000엔의 특A급 수퍼 파견직원이다.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고 정규직 사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파견사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규 직원보다 일 잘하는 파견사원은 어찌 보면 사회를 변모시키는 주역일지도 모른다.사회현상은 일종의 생태계와 같이 다양한 요인들이 얽혀 현재의 상황으로 표출된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도 따지자면 노조 및 경직된 고용의 관행과, 이를 비켜가려는 조직의 자본주의적 합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단 정규직 직원을 채용하면 4대 보험을 비롯하여 온갖 비용의 원천이 되니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비정규직의 비중을 늘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지식경제로 이행되면서 사람들의 전문성은 다양하고도 깊어져서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같이 능력 있는 비정규직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이런 문제를 두고 비정규직을 시한부로 없애라는 식의 법을 제정한 것은 겉으로는 차별받는 비정규직을 보살핀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열심히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며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대부분의 주역을 '나쁜 사람'으로 모는 이념적 발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늘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사회 현상의 정당성 문제를 단숨에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기업 내부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진정 기업의 경쟁력은 종업원의 역량에서 나오므로 종업원은 회사의 자원이다. 따라서 기업으로서는 당연히 종업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여 장기적으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 되도록 대접해야 한다. 그러나 종업원 관계를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골치 아픈지 아는 기업으로서는 핵심 역량과 밀접한 종업원 외에는 파견사원으로 채우는 방식에 유혹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이는 결국 인사관리라는 골치 아픈 일을 외주화하는 전략으로서 기업 경쟁력의 한 방안이 될 수도 있다.과거에 비정규직은 말단 서기 업무, 전화 교환원, 전표 기입을 위한 경리 등 정규직을 보조하는 업무에 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거의 모든 직종에 다양한 파견사원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예컨대 공장을 착공하여 시험 가동할 때까지만 맡아줄 공장장을 계약직으로 채용할 수도 있고, 외국과의 합작 협상을 위하여 법률 고문을 채용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은 단지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념적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로 우리가 모르는 새에 기업 조직은 압도적인 비율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아마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물론 비정규직의 확산이 사회 정의라는 차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사원은 별 실력 차이도 없는 정규직 사원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보상을 받으면서 계약 해지의 두려움에 늘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현상의 불합리한 점을 법제화로 일거에 어찌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면서 현재로부터 차근차근 해법을 찾아 나가는 자세, 이것이 진정한 정치다.

위기극복 선봉대는 기업가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9. 2. 9 한국경제
각종 경제대책 '희망' 주기엔 미흡
기업가정신 북돋는 여건 마련을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몰아친 위기의 한파가 전방위에 걸쳐 진행 중이다. 위기의 파고가 높다 보니 그 처방에 대해서도 각양각색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시경제적 처방과 공공 사업을 통한 단기적인 일자리 만들기 같은 방안들이 왠지 임시방편과 같이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80년 전 서구의 대공황과 요즘 경제위기의 원인은 다르지만 그 결과 사람들이 믿어 왔던 사회 · 경제시스템에 실망하고 좌절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930년대 유럽은 전쟁과 대공황의 여파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대부분의 시민이 절망했다. 오늘날 우리 상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때와 닮아 가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는 계속 늘고 있고,집세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 전의 미네르바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엉뚱한 선동에도 휩쓸리는,마치 수용소 집단과도 같은 군중의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파시스트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서 미국이 비켜 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과학적 관리법이 태동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건너오는 노동자를 고용해 대기업 공장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프레데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고 보급함으로써 생산성은 50배나 증가했고,몇 년 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급속하게 중산층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굳이 혁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도 살 만한 풍요로운 세상이 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제대로 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기업가와 근로자들은 6 · 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기업을 일으켰으며 40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경제위기의 해법도 기업가정신의 재정립에서 찾아야 함은 물론이다. 위기를 근본적으로 탈피한 후 맞을 새 시대는 사회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윤리적 기업가의 시대가 돼야 한다. 윤리적 기업가는 경쟁력을 철저히 갖춰 고용능력과 사회를 지탱할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며,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이다. 국난 앞에 의병으로 나서 싸웠던 조상들과 같이 오늘의 경제 국난을 극복할 전위대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돼야 한다. 한국의 기업들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수가 지금의 두 배쯤으로 늘어난다면 우리가 처한 실업 문제를 비롯한 경제 위기는 저절로 해소되고 선진국형 경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인 해결책이 늘 그렇듯이 이 처방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적용 가능하다. 전제조건이란 바로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해 주고 기업가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를 말한다. 예컨대 기업가가 좀 더 경쟁력 있게 일할 여건을 온 나라가 합심해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탱할 부(富)를 창출하고 고용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역할에 대해 인정은커녕 오히려 적대시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사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은,환율의 방어나 금리 조정,그리고 단기적인 일거리를 창출하는 온갖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경제정책들보다 오히려 오늘의 경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임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조정 없는 혁신은 ‘말잔치’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8. 8. 21 동아일보


언제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거는 슬로건은 ‘변화와 혁신’이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 없이 혁신을 표방했다. 그러나 출범 초기에 미국산 쇠고기로 촉발된 혼란의 여파로 새 정부의 혁신은 아직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혁신이란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 환경 속에서 당연히 수행해야 할 과업이므로 당위성에 대해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혁신의 세부사항에 들어가면 적지 않은 이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감과 저항감을 드러낸다. 혁신은 관행과 특권을 포기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혼동 속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혁신의 어려움이 있다.노무현 정부를 돌이켜보자. 지난 5년간 추진했던 정부 혁신은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않는 소프트웨어적인 혁신이었다. 일하는 방식, 조직문화, 윤리경영이 혁신의 주된 메뉴였던 반면 조직의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라든지 조직 구조의 변화와 슬림화, 혹은 필요 없는 규제를 과감하게 제거하는 등의 구조적 혁신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혁신활동은 조직 효율 내지 조직 구조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혁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증거를 든다면,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자체 평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재직하는 직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또 혁신 분야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기관이 정작 경영성과는 극히 부진한 상반되는 결과를 드러냈다.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혁신은 실질적인 산출과 성과보다는 다소 선전적인 수사와 과정의 국면에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혁신의 단계에서 표출되기 쉬운 구성원의 거부감과 큰 저항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혁신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국민과 기업에는 진정한 가치의 창출보다는 규제의 강화와 세금 부담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결과를 빚어냈다.규제 개혁, 실용과 성장을 비전으로 내건 새 정부는 당연히 그 짐을 덜어내는 작업을 혁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혁신 과정에서 겪게 될 저항과 반대는 소프트웨어적 국면에서 자주 언급되는 ‘혁신 피로감’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조직적 저항이 따를 수 있다. 여기에 새 정부 혁신이 가진 진퇴양난의 어려움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혁신과 변화에 대해 제시한 주장을 유용하게 되새겨볼 수 있다. 드러커는 모든 기획의 첫 단계는 모든 활동, 모든 제품, 모든 과정 또는 시장에 대해서 이렇게 물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이 일이 없었다면, 그래도 지금 이 일에 뛰어들 것인가?”만약 대답이 노(No)라면 그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혁신의 출발점은 방만한 자원의 배분과 낭비를 제거하는 일, 즉 ‘체계적인 포기’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늘 강조했다. 조직이든 국가든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 있게 정비하는 일을 도외시한 혁신은 언제나 ‘말뿐인 혁신’이 되고 효용성이 고갈된 일과 규제를 다 끌어안는 혁신이 되기 때문이다.규제 개혁과 효율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모색하려는 새 정부의 혁신은 우리의 재도약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치로 내거는 혁신은 구조조정을 수반한 실질적인 혁신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난관을 남겨두고 있다.변화는 늘 위험을 무릅쓰기 마련이다. 위험을 선택하길 거부하는 자에게 기회는 없다. 이 점을 국민에게 겸손하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설득하는 전략과, 혁신에 수반되는 당사자의 희생과 헌신을 정부가 얼마만큼 끌어낼 수 있는지에 따라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경제인의 종말

한국사이버대학교 문근찬 교수 2007. 10. 31 한겨레신문 기고



‘경제인’(이코노믹 맨) 개념은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열심히 사적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돼 있다는 것으로, 현대 시장경제의 원리를 잘 대변하고 있다. 250여년 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경제행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복지에 기여하게 된다고 함으로써 경제인의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유럽 역사에서 보듯 경제인 개념은 만능이 아니었다. 이로써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대형 기업체들이 생겨난 데까지는 고금에 없는 역사적 성과였지만, 그 부작용으로 노동자들이 소외되었다. 여기서 ‘소외’란 말은 같은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태, 곧 노예 상태를 조금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다. 경제적 발전이 자동적으로 자유와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 반작용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나왔다. 더불어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로 돌변해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유럽 근대사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능하는 사회’란, 첫째, 국가는 구성원이 나름의 몫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둘째,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존엄성 내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당시 유럽 사회의 소외된 노동자들은 자신을 노예화하는 사회를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의 두 요소가 동시에 만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 또는 성장 없이 평등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결코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않은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한마디로, 이 둘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전일적 요소라고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유럽 사회가 겪었던 대규모 시민혁명이나 전체주의 혁명 같은 것을 겪지 않았지만, 지난 10여년 ‘성장이냐, 분배냐’,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 ‘시장경제냐, 규제냐’ 같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과거 유럽 나라들이 겪었던 전체주의 망령에 비하면, 이 정도 갈등은 큰 병을 막기 위한 예방접종 후의 미열과도 같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미열은 치명적인 병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걷도록 태어난 사람에게 난다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차원을 달리볼 줄 아는 ‘패러다임 전환’을 말한다. 앞서 ‘기능하는 사회’의 요건을 볼 때,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지난 세월의 이분법적인 논의가 아니라, 양극단의 관점을 아우르는 전일적인 사고와 비전을 가져야 함을 요구한다.
예컨대, 성장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이 제 몫을 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서 받는 박탈감을 치유하는 일에 ‘성장’ 못잖은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식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은 ‘양자 택일’ 논리가 아닌 ‘함께’ 논리를 요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 번영, 시장경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시 발전, 자본과 노동의 상생 커뮤니티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 혹자는 이상론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보건대, 이런 생각을 시민 두루 공유하면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할 때는 전체주의를 거쳐 몰락하는 사회로 가는 것을 보았다. 피터 드러커 박사가 60여년 전에 저술한 <경제인의 종말>이 이제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할 때다.

피터 드러커가 본 한국

2005-11-18 18:04 문근찬 <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박사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 1909년 11월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태어났으니 일주일 부족한 만 96세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피터 드러커는 GM에 대한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쓴 '기업의 개념'이란 저서를 통해 현대 경영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고전 경제학에서 중시됐던 노동과 자본의 가치가 떨어지고 지식이 경제의 기준이 되는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미래관을 제시함으로써 지식경영의 장을 열었고,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경제 성과의 차이로 인해 소련이 붕괴될 것을 실제 역사로 증명되기 10년 전에 예언하는 등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혀왔다. 1939년 30세 때 첫 저서 '경제인의 종말'을 발표한 뒤 '경영의 실제''단절의 시대''미래 경영''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 수많은 저술은 우리에게 시대를 초월한 깨달음을 갖게 한다.그는 한국을 마음 속 깊이 인정한 몇 안 되는 서구 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드러커에게 미국의 한 신문기자가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뛰어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물었더니,그는 "말할나위 없이 한국"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한국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하게 된 데는 배경이 있다. 드러커는 한국동란이 끝난 후,1954년께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국의 교육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우리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가 본 것은 불모의 황폐한 국토에,산업이라야 그저 농업밖에 없는 '농업국가 한국'의 모습이었다. 그런 한국이 불과 40년 만에 조선 철강 전자 등 산업 강국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세계경제의 당당한 일원으로 떠오르자 드러커 박사는 경탄해 마지 않았고,한국이야 말로 자신이 평생 동안 신념을 가지고 주창해 온 자유시장경제와 기업가정신의 성공사례로 여겼던 것이다.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현대사회는 지식과 지식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경영혁명의 사회다. 사회 전반에 걸쳐 스며든 '효과적인 경영'만이 자유세계를 지탱케 하고,독재자와 전체주의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단 하나의 대안이며,여기에 타협은 있을 수 없다고 그는 역설한다.그의 가르침은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요컨대,드러커가 칭찬해 마지 않던 한국이 그동안 이루었던 성장과 번영을 계속 구가하기 위해서는 오직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한국의 번영은 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고도 한국에서 경쟁력을 갖고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가,그리고 예비 기업가들이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성취와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새로운 기업을 세우는 창업을 활발히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한국의 성취를 인정해 준 드러커 교수의 명복을 빈다.

Drucker 유산의 재창조 - Druckerism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문근찬 2010. 1. 4

드러커는 경영 역사에서 교훈을 이끌어낸 사회역사학자였다. 또한 드러커의 저술들은 전통적인 학문적 경계를 넘어선 한 사상가의 증언이며,그의 책은 한정적인 사고를 하는 우리들 혼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올바른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드러커는 21세기 역사의 전개방향을 짐작케 하는 통찰력을 보여줬으며 그의 통찰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빛을 발한다.

이제 드러커를 넘어 드러커주의(from Drucker to Druckerism)로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