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찬 < 한국사이버대 교수·경영학 > kcmoon@mail.kcu.ac 2009. 4. 20
금년은 피터 드러커가 난 해로부터 100주년 되는 해다. 드러커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태어나 지난 2005년 말96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의 100년간에 걸쳐 현대 산업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형성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산업사회 속의 핵심 기관인 기업과 경영에 대해 통찰로 가득한 저술들을 펴 냈다. 그가 1939년 첫 저술인 ‘경제인의 종말’을 쓸 당시 유럽은 대공황으로 인한 좌절 속에 절대주의의 광풍에 휘둘리기도 했는데, 이번 경제위기는 그 범위와 규모가 큰 점에서 80 년 전의 대공황에 견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의 규모보다도, 드러커가 생전에 암시한 바에 의하면 이번 경제위기는 어쩌면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온 시장 자본주의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전환기’일지도 모른다.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지난 200년간 계속된 경제지상주의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전환기에 대해 서술하면서, 전환기 이후의 사회는 그 이전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 될 것이며, 고개 이전과 이후는 마치 딴 세상인 것처럼 역사의 단절이 일어난다고 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장의 단기적 경제대책보다도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전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드러커는 그의 초기 저술인 ‘경제인의 종말(1939)과 ‘산업인의 미래(1942)’에서 새로 탄생한 대기업 중신의 산업사회가 어떻게 하면 정당성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인가를 끊임 없이 고민했다. 이 두 저술에서 드러커는 자본주의가 침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서, 자본주의가 인간의 사회•경제적 삶을 통합시키는 절대 가치에 복속되어 있기 때문이라 했는데, 그 가치란 바로 ‘경제인(economic man)’이라는 세속적 원리였다. 경제인의 원리는 개인이나 개별 기업이 열심히 사적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이 경제지상주의에 의해 사회적 부를 창출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신 자본주의에서 윤리는 증발했고, 옹졸한 사익의 원심력은 사회를 공동체적으로 결집시켰던 구심력을 산산이 파괴하는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드러커는 자본주의의 시장 메커니즘이 다른 이념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보면서도, 실업이나 계급투쟁이나 사회적 소외라는 취약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구조적 대응방안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경제인의 원리’에 결부되어야 할 ‘정신적 가치’의 문제이다.
현재는 드러커가 늘 염려했던 문제가 한꺼번에 표면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공공이익을 돌보지 않는 사익의 추구,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배분의 정의가 실종된 채로 심화되는 양극화의 문제, 끊임 없이 요구만을 하는 노동조합 등은 경제공황과 맞물려 사람들을 좌절하게 한다. 그런데 좌절한 대중은 80년 전의 유럽사회에서와 같이 불합리한 정치세력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며, 또한 대중은 그런 정치세력에 의한 최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일찍이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파시즘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번 전환기를 위기가 아닌 새 시대를 맞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모습에 대해 드러커는, 단지 성장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기업가의 시대,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사회에 공헌하는 지식근로자의 시대가 되어야 함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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