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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2일 금요일

중도실용주의가 담아야 할 정신적 가치

오늘의 우리 사회는 이념적 갈등과 경제 공황이라는 상호 관련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난국을 타개할 목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중도실용주의를 다시 강조했다. 그런데 중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그 단어가 주는 모호성으로 인해 좌와 우 모두에게 배척되는 양상이다. 대개의 반응은 좌와 우라는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회색분자 정도로 중도를 평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러나 이번 논의를 단순히 일시적인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전환기에 이루어져야 할 노력의 하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역사의 전환기로서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전환기 이후의 사회는 오늘날과는 아주 다른 사고체계에 의해 사회의 정당성이 정의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얼마나 다른가 하면, 그 시기에 자라난 젊은이들은 바로 전 세대인 오늘날의 혼란과 이념 갈등을 도저히 이해 못할 현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다른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중도실용의 콘텐트를 논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추구해온 자유민주주의가 새 시대에 대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부족한 부분은 자본주의의 절대선인 양 추구되어 온 경제지상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일찍이 드러커는 ‘경제인 개념’ 즉 경제지상주의의 맹신이 자본주의 사회가 청산해야 할 문제의 뿌리로 보았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을 써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면 사회는 성장하고 사람들은 행복하게 된다고 했다. 실로 이 경제인 개념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게만 하면 사람들의 불평등쯤은 감내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 경제지상주의가 새로 도래할 전환기 이후의 다원화된 사회에도 정당하게 작동할 것인지, 즉 정당한 사회를 만드는 원리가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풍요를 저급한 가치인 것처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성장이 사람의 정신적 풍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념의 산물이며, 우리가 절대빈곤에서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한 것은 바로 시장 자본주의의 덕이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에 비해 자본주의는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자유의 속성을 그 안에 품고 있다는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공황 등 사람들의 평등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이 자본주의적 가치는 자주 곤경에 처한다.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유럽의 1930년대를 보면 현재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결과 150 여 년 간 지속되어 온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마르크스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절대주의 등 온갖 ‘이즘’에 빠져들었다.

드러커는 그의 초기 저술 ‘경제인의 종말’에서 서구 사회가 파시즘 전체주의에 빠져드는 과정을 분석했다. 드러커에 의하면, 오랫동안 사람들의 신념으로 자리 잡아 온 중상주의적 ‘경제인의 개념’이 자유와 평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에 실망한 대중은, 설상가상으로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극심한 실업이 발생하자 자본주의 대신에 일순간에 이 난국을 진정시킬 비법을 갈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대신 사회적 진공상태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비법이 바로 파시즘 전체주의라는 ‘폭탄’이던 것이다.

파국을 막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행동은 없이 좌와 우로 나뉘어 완강히 저항만을 할 뿐이었다. 이는 현재의 우리 사회와 우려스럽게도 매우 닮은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순수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첨예한 갈등으로 사회가 파국을 맞게 될 가능성보다 이념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한 논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논의되고 있는 중도실용주의란 경제지상주의로 치달아 왔던 그동안의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이 핵심내용이 되어야 한다. 즉 중도실용주의는 자본주의의 강점에다가 ‘기능하는 사회’라는 핵심적 요건인 ‘자유와 평등’이 잘 결합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록 경제성장이 다소 더디더라도 사회 구성원이 총체적으로 좀 더 화합하고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방향전환을 말한다.

한마디로 중도실용주의의 핵심 가치는 경제지상주의를 넘어 ‘도덕적인 규범이 살아 있는’ 시장 자본주의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윤 추구와 아울러 실업 문제 등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기업가, 지나친 보수의 격차는 사회 갈등의 원인임을 자각하고 양보할 줄 아는 전문가 그룹과 경영자층,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사회를 지탱할 생산성을 내는 책임 있는 근로자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중도실용주의가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중도실용주의는 다가오는 전환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적용될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담는 그릇이 되었으면 한다.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2009.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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