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는 지배자가 주민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상징이다. 오웰이 그린 사회에서는 모든 이들은 당국의 완전한 감독 하에 살아간다. “빅 브라더는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말로 텔레스크린 속 빅 브라더는 이 사실을 끊임 없이 주지시킨다. 서울의 도시철도공사는 소설 속 빅 브라더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런 성향을 다소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한 가지 예는 에스컬레이터 두 줄 타기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의 좌측을 바쁜 사람들을 위해 비워 놓던 전통을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 두줄 타기 캠페인으로 망가뜨렸다. 굳이 망가뜨렸다는 표현을 하는 이유는 도시철도공사의 이 캠페인이 에스컬레이터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키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혼란만 가져온 점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시민들은 왼 쪽을 바쁜 사람을 위해 비워 놓고 있는 가운데, 그 홍보의 영향인지 나란히 가로막고 서 있는 사람들도 더러 생겼다. 그러다 보니 시간 절약이 필요해 에스컬레이터 왼쪽으로 걷는 사람들과 막아 선 사람 간에 무언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도시철도공사가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손잡고 에스켈레이터를 가로 막고 있는 포스터를 붙이고 캠페인을 벌인 결과치고는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도시철도공사의 이런 캠페인이 시민들의 예절과 관습을 섣부르게 재단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예는 일부 전철역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내내 들어야 하는 녹음 목소리다. 필자가 이용하는 역에서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뛰거나 장난치면 다칠 염려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근엄한 목소리가 벌써 여러 해 동안 한 시도 빠짐 없이 반복해서 울려 퍼지고 있다. 더욱이 안내방송은 상, 하 양 방향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엇박자로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 소리는 마치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처럼, “도시철도공사는 시민들이 어린 아이마냥 뛰거나 장난치지 않는지 늘 보고 있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녹음 방송을 수년째 똑같이 반복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력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이런 식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몇 년 전 일본 도쿄에 출장을 갔을 때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느꼈던 인상은 보다 인간적이었다. 출근 시간의 혼잡 속에서 환승역은 수 많은 출근 시민들로 붐볐는데, 지하철 역 근무자가 승객의 동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서 시민들의 흐름이 서로 뒤엉키지 않도록 안내하며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그 지하철역 특유의 구조와 흐름에 맞게 사람들의 동선을 좌, 우로 안내하여 정착시키려는 것 같았다. 이와 비교하자면 우리 지하철은 획일적으로 우측 통행을 유도하는 화살표와 발자국 표시를 붙인 것만으로 시민들의 통행 습관을 재 정립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각 지하철역마다의 구조와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따른 동선 흐름의 차이를 반영하지는 못한다.
소설 속 빅브라더는 늘 감시하며, 반복적인 선전으로 시민을 지배한다. 서울의 지하철도 이제는 시민들이 출근 길 아침부터 이런 느낌을 받게 하기보다는 보다 자율적인 민주 시민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들도록 안내 방법을 개선했으면 한다.
2010. 1. 12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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