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는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가 전세계를 덮었던 한 해였다. 여러 전망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경제위기의 한파는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아직 진행 중이다. 흔히 이번 경제 위기를 1930년대의 대 공황에 견주기도 한다. 그만큼 경제불황의 골이 깊다는 것인데, 실제로 주위를 돌아 보면 갑작스런 경제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의 위기에 직면하는 사람들이 차츰 많아지고 있다.
경제위기의 파고가 높다 보니 그 처방에 대해서도 각양각생의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시경제적 처방들과 공공 사업을 통한 단기적인 일자리 만들기 같은 시책들이 왠지 임시방편과 같이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위기가 대공황에 비견될만한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서 오늘날의 경제위기가 내포한 문제와 근본적인 처방에 대해 80년 전 대공황 시대의 역사를 통해 배울 필요가 있다.
80년 전 서구의 대공황과 오늘날의 금융위기의 원인은 다르지만 그 결과 사람들이 믿어 왔던 사회경제시스템에 실망하고 좌절에 빠졌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동일하다. 1930년대 말의 유럽은 전쟁과 대공황의 여파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절망했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때와 닮아 가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고, 집세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이렇게 경제 불황이 심해짐에 따라 사회 속에는 적절한 역할과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대중이 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 전의 미네르바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엉뚱한 선동에도 휩쓸리는, 마치 수용소 집단과도 같은 군중의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이 경제불황의 최대 문제점이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 문제를 다룬 바 있는데, 우리는 드러커의 저술을 통해서 오늘의 경제위기가 제기하는 문제의 의미와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드러커는 1939년 자신의 첫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에서 경제공황과 파시즘 전체주의의 발흥을 분석하면서,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에서 자주 공격 받는 이슈에 대해 진단했다. 이 책에서 드러커는 당시의 유럽 사회의 모습을, “국수주의적 긴장과 국제적 혼란 속에서 서구의 시민들은 전체주의를 혐오하면서도 서구문명의 자기파괴적인 무능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전체주의에 빠져들었다.”라고 요약한다.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파시스트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던 것이다. 모든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당장의 절망감에서 벗어나고 싶게 하는 상황은 이렇게 역사를 바꿀 정도로 파괴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서 미국이 비켜 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과학적 관리법이 태동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건너오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기업 공장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프레더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고 보급함으로써 생산성은 50 배나 증가했고, 몇 년 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급속하게 중산층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굳이 혁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도 살만한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제대로 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기업가와 근로자들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기업을 일으켰으며 40년 만에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점을 높이 산 드러커는 어느 벤처 잡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의 최고 실천자는 바로 한국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자면, 이번 경제위기의 해법도 기업가정신의 재정립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위기를 근본적으로 탈피한 후 맞을 새 시대는 사회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윤리적 기업가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윤리적 기업가는 우선 경쟁력을 철저히 갖춰 고용능력과 사회를 지탱할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며, 더 나아가 여력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이다. 또한 종업원의 참여로 진정한 기업시민 의식을 일깨우고, 분식회계와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는 기업이다.
국난 앞에 의병으로 나서 싸웠던 조상들과 같이 오늘의 경제 국난을 극복할 전위대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되어야 한다. 희망컨대 한국의 기업들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수가 지금의 두 배쯤으로 늘어난다면 우리가 처한 실업 문제를 비롯한 경제 위기는 저절로 해소되고 선진국형 경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인 해결책이 늘 그렇듯이 이 처방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적용 가능하다. 전제조건이란 바로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해 주고 기업가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를 말한다. 예컨대 기업가가 좀 더 경쟁력 있게 일할 여건을 온 나라가 합심해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탱할 부(富)를 창출하고 고용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인정은커녕 오히려 적대시 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사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은, 환율의 방어나 금리 조정, 그리고 단기적인 일거리를 창출하는 온갖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경제정책들보다 오히려 오늘의 경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임은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경제위기에 대한 단기적 처방에 묻혀서 철저히 누락되어 있다.
2009. 1. 29
드러커리즘 연구소장 문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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