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글 중에서 ...
나는 물질적인 풍부함, 괄목할만한 경제성장보다는 가능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보니 박 대통령에 대하여는 역시 과를 많이 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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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에 대한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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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사장, 사람답게 사는 문제가 경제보다 우선이라는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문제는 어느 정도의 풍요함은 갖춰놓고서야 인간답게 사는 문제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풍요해져야 철학, 역사, 민주주의 등
사람 사는 문제를 연구할 경황이 생기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모두 종교적인 삶에 인간답게 사는 문제를 열심히 추구하지만 궁핍하니까 별 의미가 없고, 일할만한 사람들이 모두 승려가 돼서 그러고 있으니 잘 살 수가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못살지만 다 평등하게 느끼고, 따라서 행복 지수가 높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웃긴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물질적인 풍요함이 있어야 정신적으로도 수준이 올라가고, 그 후에 민주주의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민주주의와 별개의 단어지만 이웃 사촌처럼 함께 다닙니다.
그런데 아마 어느 정도까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딴지성 글이 되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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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9일 금요일
친구와의 댓글 대화 - 박정희 대통령
'백선업장군 글을 읽고'에서 제 답글에 대한 친구의 반론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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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 말씀 흥미있네. 공감이 가네요.
단지 경제적인 면의 박 정희대통령은 공감하는데, 워낙 인권이 침해되다 보니 나는 공보다 과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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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위 친구의 글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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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기 내지 중기까지는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없던 나라에서 중화학 공업을 일으킬정도로 성장시켰는데,
세계 역사 상 거의 유일한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했어도 그 시대에는 그많한 경제성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필리핀,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는 우리나라보다 서너 배 잘 살었던 나라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고, 북한도 당시에는 남한보다 산업이 월등히 나았습니다.
독재 문제가 늘 이야기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가들이나 정부 관료들에게 자율을 허용했고,
능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박대통령이 민주투사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들을 전면 허용했다면 당시로서는 경제발전을 안 되었을 걸로 보아야 합니다.
외국에서 아무 것도 없는 한국이 그 많은 외자를 끓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박정희라는 지도자를 믿고, 한국에 돈을 빌려 줘도 떼 먹힐 일은 없겠구나
라고 안심할 수 있었던 덕입니다.
후기의 박정희 대통령은 부인도 비운에 보내고 하면서 안정감이 많이 떨어진 세월이었습니다.
장기 집권에 연연했던 점도, 이런 상황에서 판단력도 좀 떨어전 점도 있겠고,
박대통령 본인으로서는 잡아 논 기틀을 허물면 나라가 금방 절딴날 걸로 생각했겠지요.
우리 현대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정도면 그냥 영웅으로 대접해야지,
잘한 점과 못한 점이 반반이다 식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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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 말씀 흥미있네. 공감이 가네요.
단지 경제적인 면의 박 정희대통령은 공감하는데, 워낙 인권이 침해되다 보니 나는 공보다 과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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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위 친구의 글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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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기 내지 중기까지는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없던 나라에서 중화학 공업을 일으킬정도로 성장시켰는데,
세계 역사 상 거의 유일한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했어도 그 시대에는 그많한 경제성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필리핀,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는 우리나라보다 서너 배 잘 살었던 나라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고, 북한도 당시에는 남한보다 산업이 월등히 나았습니다.
독재 문제가 늘 이야기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가들이나 정부 관료들에게 자율을 허용했고,
능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박대통령이 민주투사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들을 전면 허용했다면 당시로서는 경제발전을 안 되었을 걸로 보아야 합니다.
외국에서 아무 것도 없는 한국이 그 많은 외자를 끓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박정희라는 지도자를 믿고, 한국에 돈을 빌려 줘도 떼 먹힐 일은 없겠구나
라고 안심할 수 있었던 덕입니다.
후기의 박정희 대통령은 부인도 비운에 보내고 하면서 안정감이 많이 떨어진 세월이었습니다.
장기 집권에 연연했던 점도, 이런 상황에서 판단력도 좀 떨어전 점도 있겠고,
박대통령 본인으로서는 잡아 논 기틀을 허물면 나라가 금방 절딴날 걸로 생각했겠지요.
우리 현대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정도면 그냥 영웅으로 대접해야지,
잘한 점과 못한 점이 반반이다 식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한국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세 가지
'민주투사'가 민주주의 '결정적 요인' 아니다
문근찬 한국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뉴데일리 2010-04-09
제국주의 시대 이후에 독립한 나라 중에서 한국은 단 기간 내에 민주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성공사례에 속한다. 우리나라가 짧은 세월 동안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민주 투쟁을 했던 많은 투사들을 떠 올릴 것이다. 물론 그들의 노고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다만 그것이 과연 ‘결정적 요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들의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요인들 중 상식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요인들을 몇 가지 도출해 보고자 한다.
첫째, 현재 북한의 정치체제를 떠 올린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일등 공신은 역시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데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국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남 지역에 자유민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실기했다면 어떤 결과가 되었을지 상상해 보면 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냉전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변방의 작은 나라에 군인들을 파병하여 큰 희생을 치른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군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최근 백선엽 장군의 연재 글에 잘 나와 있듯이 우리의 선배 군인들의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분투가 있었다.
둘째는 경제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만약 경제성장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경제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한국은 이런 점에서 탁월했다.
이번 지진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티는 1804년에 일찌감치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사는 모습은 최빈국을 아직 면치 못하고 있고, 가난하다 보니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전쟁 후 필리핀,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들은 우리보다 경제가 나았었지만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이고, 그러다 보니 그 나라들은 민주주의 사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즉,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우선 어느 정도 잘 살아야 자격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서 영국, 미국, 일본 같은 나라를 보면 알 수 있다.
셋째는 안보에 문제가 없어야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섬나라든지 또는 별도의 대륙이든지 외세의 침략에서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예도 역시 영국, 일본, 미국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경제력은 꽤 있지만 유럽 대륙의 중앙에 있다 보니 외세 침략에 자유롭지 않아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60여 년 간 가상적으로 섬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한국 사이에 바다 같은 작용을 한 것이 북한이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완충지대로서 북한이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는 늘 안보의 위협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북한은 실제적인 안보 상의 위협이 될 수 없었는데, 이는 휴전 후에 한국 뒤에는 역시 미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그야 말로 ‘결정적 요인’이라 할 만 하다. 그 세 요인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인을 들면서 민주투사를 뺀다면, 민주투사의 노고에 대한 평가는 너무 소홀하다며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옥고를 치르는 등 고생한 점을 폄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역할이 ‘결정적 요인’인지 솔직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예를 통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일례로서 아이티는 1804년 독립 후 200 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민주 투사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민주국가가 될 수는 없었다. 앞에 언급한대로 가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는 군주제를 종료시킨 대혁명까지 일으켰던 나라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이 외세 침략을 막아야 한다면서 스스로 다시 군주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안보 위협 때문에 민주주의를 할 수 없었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에 따라, 우리가 지금 북한의 동포와 같이 비참한 지경에서 살지 않고 그나마 자유를 향유하며 살 수 있도록 한 ‘결정적 요인’과 관련하여 세 영웅을 꼽는다면, 첫째는 민주국가를 건국하고 외교로써 안보를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 둘째는 경제성장의 기틀을 다져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게 한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셋째는 육이오 남침과 그 이후의 안보 위협을 막아 준 미국이라는 우방을 들 수 있다. 이 특이한 결론에 대해 이념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관적인 선호의 문제를 떠나서 위 세 요인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근찬 한국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뉴데일리 2010-04-09
제국주의 시대 이후에 독립한 나라 중에서 한국은 단 기간 내에 민주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성공사례에 속한다. 우리나라가 짧은 세월 동안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민주 투쟁을 했던 많은 투사들을 떠 올릴 것이다. 물론 그들의 노고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다만 그것이 과연 ‘결정적 요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들의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요인들 중 상식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요인들을 몇 가지 도출해 보고자 한다.
첫째, 현재 북한의 정치체제를 떠 올린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일등 공신은 역시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데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국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남 지역에 자유민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실기했다면 어떤 결과가 되었을지 상상해 보면 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냉전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변방의 작은 나라에 군인들을 파병하여 큰 희생을 치른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군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최근 백선엽 장군의 연재 글에 잘 나와 있듯이 우리의 선배 군인들의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분투가 있었다.
둘째는 경제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만약 경제성장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경제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한국은 이런 점에서 탁월했다.
이번 지진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티는 1804년에 일찌감치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사는 모습은 최빈국을 아직 면치 못하고 있고, 가난하다 보니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전쟁 후 필리핀,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들은 우리보다 경제가 나았었지만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이고, 그러다 보니 그 나라들은 민주주의 사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즉,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우선 어느 정도 잘 살아야 자격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서 영국, 미국, 일본 같은 나라를 보면 알 수 있다.
셋째는 안보에 문제가 없어야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섬나라든지 또는 별도의 대륙이든지 외세의 침략에서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예도 역시 영국, 일본, 미국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경제력은 꽤 있지만 유럽 대륙의 중앙에 있다 보니 외세 침략에 자유롭지 않아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60여 년 간 가상적으로 섬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한국 사이에 바다 같은 작용을 한 것이 북한이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완충지대로서 북한이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는 늘 안보의 위협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북한은 실제적인 안보 상의 위협이 될 수 없었는데, 이는 휴전 후에 한국 뒤에는 역시 미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그야 말로 ‘결정적 요인’이라 할 만 하다. 그 세 요인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인을 들면서 민주투사를 뺀다면, 민주투사의 노고에 대한 평가는 너무 소홀하다며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옥고를 치르는 등 고생한 점을 폄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역할이 ‘결정적 요인’인지 솔직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예를 통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일례로서 아이티는 1804년 독립 후 200 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민주 투사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민주국가가 될 수는 없었다. 앞에 언급한대로 가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는 군주제를 종료시킨 대혁명까지 일으켰던 나라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이 외세 침략을 막아야 한다면서 스스로 다시 군주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안보 위협 때문에 민주주의를 할 수 없었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에 따라, 우리가 지금 북한의 동포와 같이 비참한 지경에서 살지 않고 그나마 자유를 향유하며 살 수 있도록 한 ‘결정적 요인’과 관련하여 세 영웅을 꼽는다면, 첫째는 민주국가를 건국하고 외교로써 안보를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 둘째는 경제성장의 기틀을 다져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게 한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셋째는 육이오 남침과 그 이후의 안보 위협을 막아 준 미국이라는 우방을 들 수 있다. 이 특이한 결론에 대해 이념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관적인 선호의 문제를 떠나서 위 세 요인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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