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오피니언] 입력 : 2008.01.25 22:44 / 수정 : 2008.01.26 05:04
관리편의보다 시민편의가 우선 홍보 전에 사회적 합의과정 필요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
관리편의보다 시민편의가 우선 홍보 전에 사회적 합의과정 필요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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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퇴근 때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에는 노선에 따라 지상으로 올라오는 거리가 꽤 길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지하철 승강장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포스터와 안내 문구가 붙어 있어 영 신경이 쓰인다. 문제의 안내문은 '에스컬레이터 두 줄타기, 올바른 안전문화의 시작입니다'라는 것이다. 이 글 밑에는 한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1, 2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통째로 나란히 가로 막고 서 있는 사진이 나와 있다. 요컨대 종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관행은 왼편은 걷는 사람을 위해 비워 두고 오른편에는 천천히 가도 되는 사람들이 서 있는 방법이었는데, 이 관행이 틀렸으니 포스터의 그림처럼 걷는 사람의 길을 가로 막고 나란히 두 줄로 서 있으라는 내용의 포스터다. 포스터 맨 아래를 보니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와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주관 기관으로 표시되어 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왜 이런 포스터가 나붙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의 한쪽에만 서 있고 한쪽은 비워 두거나 그쪽으로만 걸어 가다 보니 좌우 균형이 안 맞아서 기계 고장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므로 안전과 수리비 절감을 위하여 두 줄로 나란히 서서 타라는 것이리라. 이 포스터 때문인지 요즘에는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조금씩 눈에 띄고, 그런 사람에게 핀잔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더러 보게 된다. 이 안내 문구는 적잖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수년에 걸쳐 '급한 분을 위해 왼쪽은 비워 주세요'라는 캠페인으로 어렵사리 정착시킨 에스컬레이터 타기 관행을 원위치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 관행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하나의 에티켓으로 지켜지는 것인데, 이것을 어느 단위 기관의 이해관계나 경영 수지 개선을 위해 바꾸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둘째, 더욱 문제인 것은 1~4호선은 여전히 '한 줄 타기'를 홍보하고 있고, 5~8호선에서만 '두 줄 타기'를 홍보한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같은 도시철도공사 간에도 서로 의사 소통조차 하지 않은 채 한 두 명의 담당자가 탁상공론을 하다 낸 제안을 승인한 것 같은 인상이 짙다. 요즘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 사례와 같이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불합리한 규제에 대한 말들이 많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두 줄 타기' 또한 공공 기관이 별 고민도 안 한 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어렵사리 정착시킨 관행에 규제를 가한 사례로 볼 만하다. 이 포스터를 붙인 사람들은 일을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보다는 쉽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이 문제라면 좀 더 튼튼하게 설계하면 된다. 물론 '강한 설계'에 따라 시설비는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 정착된 관행을 혼란스럽게 하고, 글로벌 에티켓을 지키지 못하게 시민을 오도하는 것은 높아진 승강기 가격보다 더 큰 사회적 손실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안전과 비용을 위해 '두 줄 타기'가 진정한 해답이라면 좀 더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 공인된 기관이 이런 캠페인을 하길 바란다. 왜냐 하면 에스컬레이터는 비단 지하철에만 이용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처에서 이용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지하철에서는 '두 줄 타기'를 하고, 백화점·놀이공원에서는 '한 줄 타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이 포스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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